"'배떼기'를 아십니까. 참치를 실은 배를 해상에서 통째로 팔아 넘기는 거죠. 이런 남획은 공식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고기 떼를 모으는 불법 도구도 심심찮게 사용됩니다. 대서양, 인도양에 이어 태평양 참치도 벼랑에 섰습니다."
지난 4월부터 두 달 반 동안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함께 남태평양 솔로몬군도 일대에서 해상 감시 활동을 했던 환경운동가 최정씨의 목격담이다.
인접국 피지 출신의 그린피스 활동가 랑이 토리바우씨는 "10년 전엔 참치 낚는데 5분이면 족했지만, 이젠 배를 타고 종일 다녀도 2, 3마리 잡기가 힘들다"며 "섬나라가 일년 내내 조업할 수 있는 양을 외국 어선이 단 이틀 만에 쓸어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참치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매년 400만 톤 규모인 전세계 참치 어획량의 60%를 담당하는 마지막 황금 어장이자, 참치의 중요 산란ㆍ생육처인 태평양 어장이 남획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태평양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미국, 스페인 등에서 온 참치 선망선박(통조림용 어획선) 600여 척과 연승선박(횟감용 어획선) 3,600여 척이 조업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중서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를 비롯한 국제 수산관리기구들은 "주요 참치류 중 황다랑어, 눈다랑어는 어획량을 더 이상 늘려서는 안된다"고 몇 년째 경고하고 있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남획이 계속될 경우 최소 2종 이상이 수 년 내 멸종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참치의 위기는 당장 공급량 감소로 확인된다. 세계 1위 참치 생산국인 일본의 어획량은 2004년 52만5,000톤에서 지난해 41만3,000톤으로 21% 줄었다. 2위인 대만도 최근 5년 동안 어획량이 33% 가량 감소했다. 올해는 고유가로 인한 조업 부진 때문에 일본 등 주요 참치 소비국에선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일본과 거래가 많은 부산공동어시장의 한 상인은 "올 여름엔 중급 품질의 제주 근해산 참치까지 없어서 못 팔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참치 소비량은 확대 일로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식 생선초밥과 회가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면서 대중화됐고, 날회를 즐기지 않던 중국에서도 최근 일식당과 참치 전문점이 크게 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가공식품 형태로 참치 수입이 늘고 있다. 특히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소비량 증가폭은 가공할 수준으로, 최고급 참치로 꼽히는 참다랑어의 경우 2006년 수입량이 전년보다 1,270% 증가했다.
게다가 중국은 2, 3년 전부터 일본 및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참치 어획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국제적 우려를 낳고 있다.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도 미국의 참치 통조림 수요 증가를 노려 어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법 조업도 문제다. 남태평양 지역 조업량의 34%가 미등록이거나 어획량 미신고 어선에 의해 이뤄진다는 통계도 있다. 최예용 부소장은 "해경 조직이 허약한 섬나라 사정을 악용해 불법 조업하거나, 지나치게 적은 어장 이용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국제 기구와 환경 단체에선 태평양 지역에서 참치 어획량을 제한하는 국제협약이 조속히 맺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다음달 8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WCPFC 연례회의에서 주요 의제인 '태평양 참치 보호조치'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는 것.
WCPFC 측은 쿼터제를 통해 눈다랑어 30%, 황다랑어 10% 어획 감축을 제시하고 있다. 윤미숙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의 반대로 보호조치가 합의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어종 보호를 위해 어업국 간 쿼터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부산 해운대에선 그린피스 등 국내외 환경운동 단체 회원 20여 명이 모여 '한국은 태평양 참치의 파괴자'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세계 3위 참치 어획국으로 일본ㆍ대만과 달리 참치 생산량이 꾸준히 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획량의 90%를 태평양에서 거두고 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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