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백 마리의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가는
아기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자전거는 직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두 바퀴처럼 세계를 둥글게 만든다. 안장에 앉아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리듬을 타고 한참을 달려보라. 백 마리 여치가 치르르 치르르 우는 소리와 바람을 나락처럼 빻는 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보라. 둥글게 말린 그 귀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등을 웅크린 모양이다.
자전거가 그리는 원이, 그 둥근 귀가 어머니가 나를 낳아 준 고향으로 이끈다. 이 ‘큰 사과’는 구름과 햇살의 곳간일 뿐만 아니라 말 못할 사연을 가진 엄마의 눈물과 입양 가는 아기, 노망든 할머니의 아픔이 한데 모여 있는 곳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들에게 잘 익은 사과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탄다.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다고 했지만, 각을 내민 모퉁이에 부딪힐 때마다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날카로운 과도를 드는 대신 상처를 품고도 경쾌하게 달려갈 줄 아는 자전거 뒤로 사과껍질처럼 달콤한 길이 풀려나온다. 자신이 발 디딘 대지를 사랑할 줄 아는 이 정감 어린 기계로 지구를 사과알처럼 둥글게 깎아먹고 싶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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