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가까운 태릉에 나가보았습니다. 영하의 기온인데 아직도 나뭇잎들은 나뭇가지에 붙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의 생일은 11월 4일입니다. 그 무렵이면 찬바람이 제법 불고 낙엽이 상당히 졌던 기억이 납니다. 비라도 한번 내리면 그 낙엽들이 모두 다 떨어져 그때부터 본격적인 겨울의 황량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는 600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학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운 옛 학창시절 제 생일날,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같이 밥을 먹으려고 그 길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온통 노란 은행잎이 다 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더랬습니다. 길에 수북이 깔린 은행잎을 양탄자처럼 밟으며 학교 앞 주점으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 이 나무의 은행잎도 며칠 전에 보니 이제야 하나 둘 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면 다리가 시려 견디질 못했습니다. 소아마비를 앓아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다리는 늘 차가웠고, 결국엔 동상에 걸리거나 발가락에 얼음이 박이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이 저에게는 그만치 춥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겨울이 춥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학교 다니던 시절에 혹독했던 추위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요즘 겨울은 겨울같지도 않습니다.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서울 기온이 영하 15도, 20도 가까이 내려가곤 했습니다. 삼한사온도 있는, 그야말로 사계절이 분명한 나라가 우리나라였습니다.
기상청 말을 들어보니 이제 여름이 과거보다 한 달 정도 더 길어졌다고 합니다. 기후가 이상해져 가을잎도 늦게 지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엊그제 흰 눈이 앙상한 나뭇가지 위를 덮는 것이 아니라 단풍잎 위를 덮는 기현상도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우리 생애에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끔찍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말세론은 있었지만 이번에 우리가 겪는 위기는 정말 구체적이고도 확실하며 현실적인 것입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를 이른 시일 내에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인간 개개인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적극 억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전기와 물을 아끼고, 각종 소비를 자제하고 낭비를 줄이는 마음의 자세, 더 나아가 소박하고 검소한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구는 우리에게 겸허한 자세로 살 것을 강요하고 있으니까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 우리는 쓰레기 분리수거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쓰레기를 분리해야 된다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를 잡았고, 세계 제일의 분리수거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각종 조처들도 일단 시작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몸에 밸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다시 지구가 제자리를 찾게 되고 겨울이 겨울답게 추워지는 그 날,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한 보금자리 지구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정욱 소설가ㆍ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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