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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신문과 휴지 사이

입력
2008.11.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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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다. 5분이 멀다 하고 나타난다. 보고 나서 선반에 올려놓기 무섭게 집어간다. 심지어는 들고 있는 것까지 달라고 하기도 한다. 키가 작은 노인들은 신발을 신은 채 의자를 밟고 올라가 신문을 집는다. 서 있는 사람을 밀치고, 앉아 있는 사람의 무릎을 치고, 가슴으로 얼굴을 미는 것도 예사다. 미안하다는 표정도 말도 없다.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일도 종종 눈에 띈다.

지하철을 타면 보통 서너 명은 만난다. 대놓고 불평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모은 종이(무료신문)를 몇 천원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하철은 '생존경쟁'의 일터다.

승객들의 민원이 쏟아지자 서울메트로는 지난 4월 '무료신문 수거인 인증제'를 도입했다. 허가 받은 노인 180명만, 그것도 한가한 시간에 무료신문을 가져가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복잡한 출퇴근시간에 이리저리 부딪치며 신문을 가져가는 노인들만 더 극성을 부리게 만드는 결과만 낳아 6개월 만에 폐지하고 말았다.

지하철의 무료신문 수거경쟁

대신 9월 30일 캠페인을 시작했다.'보고 난 신문을 선반 위에 올려 놓지 말고 대합실 수거함에 버려달라는 것'이었다. 지하철 선반에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모든 역의 승강장 계단입구나 개표구에 수거함을 설치했다. 그러나 승객들은 습관처럼 보고 난 무료신문을 선반 위에 올려 놓고, 그 먹이를 발견한 노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지하철은 오늘도 어수선하고 불편하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서울지하철 5,7호선이 선반을 없앴다가 시민들의 항의로 다시 설치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난 풍경이다. 정보홍수시대는 지하철 풍속도 많이 변화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손쉽게, 공짜로 제공되는 정보와 지식과 오락이 지하철 안에도 넘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휴대폰이 있고, MP3가 있다. 무료신문들도 널려 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보고, 무료신문을 펼쳐 정보를 먹는다. 그리고는'정보의 포만감'을 느낀다.

그 정보라는 것들이 어떤가. 대부분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다. 극소수 매체를 제외하면 무료신문들 역시 통신사가 제공하는 뉴스를 여과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옮겨 놓았다. 다양한 것 같은데 사실은 단지 그릇만 따로일 뿐인, 또 다른 정보 획일화이다. 정보가 아니라 정보라는 이미지만을 먹는다. 공짜라는 의식은 사람들에게 정보의 품질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게 했다. 정보의 깊이나 가치에 대한 기준까지 앗아갔다.

지하철에서의 정보는 일회용이다. 무료신문을 집이나 사무실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다. 그곳에도 정보는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본 신문을 내가 다시 볼 필요도, 그럴 기회도 없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내리며 미련 없이 신문을 선반에 던지고, 그것을 수거노인이 잽싸게 집어가는 순간 그것은 휴지가 된다. 정보 역시 쓰레기가 된다.

수거노인과 지하철의 선반철거 해프닝은 우리사회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다. 정보와 자원의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와 낭비에 대한 비웃음. 과거에도 사람들은 신문을 선반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누구도 그것을 쓰레기로 생각하지 않았다. 길게는 이틀, 적어도 그날 하루 동안은 누군가 다시 봐도 좋을 정보로 살아 있었다. 그 시간이 지금은 불과 몇 초, 몇 분으로 줄었다.

무분별한 정보 생산ㆍ소비 풍경

서울에서만 줄잡아 매일 160만~190만 부의 무료신문이 지하철로 들어간다. 서울메트로 노선(1~4호선)에서만 하루 60만부가 단 몇 분만 살고는 1kg에 200원 짜리 휴지가 된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선(5~8호선)에서도 비슷하다. 이유는 자명하다. 새로운 길이 생겼다고 좋아라 하며 스스로 엄격함을 잃어버리고, 자존심까지 팽개치며 마구 달린 결과다. 오늘도 지하철에는 그렇게 달려온 정보가 선반 위에 죽어 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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