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의 형국이다. 유일한 신뢰의 끈인 개성공단에서도 김정일 정권 타도 전단이 발견되고 남측 기업은 이를 항의하는 북측 근로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북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전면중단도 불사한다는 방침이고 남한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의연한 버티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북이 변해야 손 내민다는 고집
화해협력의 10년 탑인 금강산 관광은 문 닫은 지 오래고 창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개성공단마저 앞날이 불투명하다. 이미 쏟아 낸 입장과 명분에 매달려 남과 북은 끝 모를 기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대외정책에서 명분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실속 없는 명분에만 집착할 경우 혹독한 피해를 감수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명청 왕조 전환기에 인조는 친명배금(親明排金)이라는 낡은 명분을 고집하다 삼전도의 굴욕은 물론 죄 없는 백성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말았다.
지금의 남북관계 역시 이명박 정부는 지나친 명분과 원칙에 매달려 정작 한반도 정세에서 큰 실리를 놓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북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오기가 결국은 남북간 긴장 고조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 상실을 부르고 있고 개성공단 폐쇄의 경우 안보적 손실과 함께 경제적 손해마저도 감수해야 한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전제에 포위되어 있는 듯하다. 첫째는 북한이 먼저 변화해야 손을 내밀겠다는 고집이다.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퍼주기와 끌려가기로 규정한 나머지 북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지나친 강박에 빠져 있는 탓이다. 북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생과 공영의 상대로 인정한다면 남북관계를 '통해' 북을 변화시키는 게 순서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관계를 단절한 채 변화를 무작정 기다리는 '고립정책'이 아니라 대상국가와의 관계 확대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개입정책'이 훨씬 효과적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북이 먼저 태도를 바꿔야 관계를 맺는다는 전제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인도적 식량지원에도 북이 먼저 요청해야 한다는 치졸한 조건을 내세웠다. 북이 변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강박이 정작 상대방의 태도를 바꾸지도 못한 채 혼자만의 폐쇄된 틀에 갇혀 있게 할 뿐이다.
다음은 북이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주관적 희망이다. 이명박 정부는 원칙대로 버티기만 하면 북이 언젠가는 고개를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임기 초반 불가피한 진통이라는 상황인식이나 결국 자신의 진정성을 북이 이해할 것이라는 희망 피력을 보면 꿋꿋하게 버틸 경우 북이 마침내 자신의 뜻을 좇아 굴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북한은 결코 그런 상대가 아니다. 수십만 명의 아사자를 내고도 외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체제다. 식량을 끊고 접촉을 끊는다고 해서 북한이 못살겠다며 고개 숙이고 나올 거라는 기대는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만을 믿고 현실에 존재하는 북한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결국 북이 굴복할 거라는 희망
북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고집과 북이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상충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북의 선 변화를 고집한다면 어떻게든 북한이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북이 결국 변할 거라는 믿음이라면 변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다. 결국 두 가지 인식의 결론은 무작정의 기다림이다. 북미관계가 진전되어도,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르러도 이명박 정부는 의연히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그러나 그 사이 한반도 정세는 우리의 손을 떠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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