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텔레비전은 휴대폰부터 책상 위의 컴퓨터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전송되고 있어 그 자체로 다매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텔레비전의 다양한 전송은 전통적으로 텔레비전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형식을 깬다는 점에서 미디어 환경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프로그램을 전송하는 기존의 방송사는 뉴미디어 매체들에 프로그램을 전송하는 여타의 미디어 센터와 공존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이제 텔레비전은 궁극적으로 영화, 음악, 비디오게임 등 다른 형식의 여가활동과 경쟁관계에 있다.
여기에 더해 TV 시청 행태가 점점 더 안방이나 거실 한가운데서 벗어나 개개인의 행동 반경과 밀착됨에 따라 여행, 스포츠 등 야외에서 이뤄지는 다른 여가문화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경쟁관계가 생긴다는 것은 텔레비전이 단순히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기계상자가 아니라 여가활동들과 유사한 이용 형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형태는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 자신이 원하는 그 시간에 소비할 수 있다는 특성이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이제 텔레비전은 그것이 기존의 지상파든, 이제 드디어 막을 올리는 IPTV가 되었든, 휴대폰으로 보는 DMB가 되었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고, 또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야 한다. 여기에 뭔가 배울거리라도 같이 있고 문화산업의 돈벌이가 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새로운 매체가 도입될 때마다 방송법이 어떻고, 사업자 자격이 어떠해야 하고, 어떤 규제 틀이 있어야 하고,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늘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언제나 말만 많았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콘텐츠에 대한 문제다.
케이블TV를 보고 있으면 '미국 사람들은 드라마를 어찌 저리 영화처럼 잘 만들까?' '일본 드라마는 참 얄팍하면서도 잔재미는 있구나' '저런 소재들은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일본 드라마가 없었으면 한국은 소재를 어디서 가져왔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며 보는 재미에 빠지게 된다.
역시 드라마의 질과 다양성이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만들고, TV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정작 TV를 켰는데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짜증나고 우울해질 것이다.
얼마 전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미국의 국립여론조사기관인 일반사회여론조사(General Social Survey)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불행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에 비해 30% 가량 더 많은 시간 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들은 1주일에 평균 19시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반면, 불행한 사람들은 1주일에 평균 25시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진은 불행한 사람들의 우울함이 텔레비전을 더욱 많이 시청하도록 하는 이유가 됐는지,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면서 우울해졌는지의 여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소한 국내 TV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쩌다 기분이 우울해서 '오랜만에 TV나 볼까' 하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더 심한 우울증에 빠져버린다. 'TV는 시청자의 불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결과를 결코 보고 싶지 않음에도 말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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