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고 과감한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데 전문가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신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속도'에만 신경을 쏟다 보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바람직한 구조조정 해법이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정부의 역할
전문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정부의 '면피주의'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든, 아예 빠지고 시장 기능에 맡기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에 숨어서 어설프게 조종하면서 결과에 대해 은행권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이 되풀이 되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기업구조조정위 사무국장을 지낸 이성규 하나은행 부행장은 "과거 일부 정책 당국자들이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진 이후로 공무원들이 소극적인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며 "공무원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기능을 더욱 중시하는 의견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 이라면서도 "판단은 전적으로 금융기관, 즉 시장에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원칙과 잣대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기업 구조조정은 투명하고 명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적 배려나 입김이 개입이 된다면, 결국 언젠가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구조조정에 앞서 대상 기업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건설사나 조선업체들이 반발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구조조정은 남의 뼈를 깎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 원칙이 명확하고 과정에서 이를 잘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도 "환란 당시처럼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부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인 만큼 정부와 은행권이 평가기준과 잣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방식
정부와 은행권은 지금 건설, 조선, 저축은행 등의 업종을 통째로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업종 내 우량기업이든 부실기업이든 도매금으로 대외 평판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과 조선업은 대외 평판이 나빠지면, 흑자 도산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업종이다.
타 업종과의 형평성도 문제가 된다.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업종 내 기업간 격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타 업종과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통상 마찰로 비화될 소지도 있다. 과거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한 기업 지원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판정된 전례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만약 대주단 지원을 받은 건설사가 해외 수주를 하게 된다면, 경쟁 관계에 있는 외국 기업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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