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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앞두고 전집 개정판 낸 소설가 최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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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앞두고 전집 개정판 낸 소설가 최인훈

입력
2008.11.2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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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9혁명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60년 10월. 한 해 전 갓 등단한 청년작가가 중편소설 한 편을 세상에 던졌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포박돼 있던 전후의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금기였던 '이념의 선택'이라는 놀라운 문제를 제기한 <광장> 이 그것이다.

<광장> 의 주인공 이명준은 좌도 우도, 남한도 북한도 버린 채 제3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버린다. 한국 현대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이 <광장> 부터 <회색인> (1963)을 거쳐 <화두> (1994)에 이르기까지, 분단국가의 지식인이 감내해야 하는 고뇌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진력해온 최인훈(72)씨가 그 청년 작가였다.

그가 내년이면 등단 50년이 된다. 그의 문학인생 50년을 기념해 1980년 12권으로 모아졌던 '최인훈 전집'(문학과지성사 발행)도 28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번 개정판까지 치면 최씨는 <광장> 을 무려 8번이나 고쳐 썼다(11월 현재 <광장> 은 159쇄를 찍었고, 약 55만부가 팔렸다).

개정판 전집은 <화두> (2권)과 산문집 <길에 관한 명상> (1989)을 추가, 모두 15권으로 내년 상반기중에 완간될 예정이다. 개정판 전집의 1차분 5권 발간 기자간담회가 열린 19일, 최씨가 참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글 쓰는 자로서, 이렇게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서 너무나 영광스럽다"고 말한 그는 "(내가) 좋은 말을 할 수 있다면 많이 해주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여정, 작가로서의 자의식, 역사와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 향후 집필계획까지 독자들이 품어왔을 법한 궁금증에 대해 2시간여 동안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 <광장> 이 나온 지 50년 가량 지났다. 당신에게는 어떤 작품인가.

"나는 아직도 <광장> 을 떠올릴 때마다 초판 서문('… 구 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가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을 쓸 때의 감격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광장> 을 쓰게 한 4ㆍ19혁명은 우둔했던 사람들도 시대의 문제에 대해 눈을 뜨면서 총명해지고, 영감이 부족하던 예술가도 새로운 발상으로 예술적 결과물을 내놓던 시대였다. 나는 단지 그 시대에 그 장소에 있었던 것뿐이고 역사가 비추는 조명에 따라 내 눈이 본 것을 글로 옮긴 것뿐이다. 개인에게 닥친 큰 사건에 대해 '문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통해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다."

- 4ㆍ19는 어떤 의미였나.

"3ㆍ1운동과 함께 20세기 우리 역사가 경험한 2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4ㆍ19는 남한 각계각층 사람들이 8ㆍ15 이후 자신이 경험한 세월을 거의 3ㆍ1운동 수준으로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당시 남한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간적 위신'이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된 사건이다. 북쪽에서 그런 경험을 못했다는 것은 '북쪽 역사의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 <광장> 을 소설로는 드물게 여러 차례 고쳐 썼다(이번 전집까지 모두 8차례 개정). 이유는.

"처음 쓸 때는 4ㆍ19 직후 너무 생생한 사건을 역사에 증언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역사의 현장에 있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잘 아시지요?' 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문학의 본령으로서 문학성을 보강한 것이다.

개정의 권리가 있는 내 자신이 정신력이 있는 한,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후대 독자들에게 보내고 싶다. 이번 전집 개정판에도 고친 부분이 있다. 고친 부분을 마음에 들어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스로의 문학적 성향을 말한다면.

"어느 편이냐 하면 전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로 비유하자면 19세기식 사실주의가 아니라 20세기 화가들 비슷하다. 문학 바깥에 원본이 있고 그것을 문학이라는 특수렌즈로 본다는 식이 아니라, 내적 형식이 갖춰진 혹은 상상의 시공이 펼쳐지는 '문학'이라는 원본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외부의 일들에 대해 나는 태생적으로 미학적 내구성이 강한 유파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작가'로 평가된다.

"이의는 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정치와 언어예술은 얽혀있다."

- 발표하지 않은 원고가 있는가.

"한 권의 소설집을 낼 만큼의 원고가 있다. 다음 소설집의 소설들은 무언가를 적는 것이 마음대로 가자고 한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실험한, 전위적이고 심미적인 소설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의 언어예술가들은 '역사'라는 엄처시하에서 예술을 해온 삼류 역사가나 역사기자 비슷한 존재였다. 나는 <화두> 까지 쓰고 싶은 것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도 나오는 것이 있더라. 그런 것에 대해 내 의식을 적셔봤다."

- <광장> 의 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요즘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 인터넷 언론의 폐해가 비판받고 있는데.

"그 역시 말길이 넓어지는 과정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묘지처럼 조용하거나, 아니면 공동묘지에 대한 안내방송만 나오는 세상을 원하는가. 말이 잘 안 되더라도 존치시키는 것이 이른바 '자유주의', 좋은 의미에서 '시민문화' '부르주아 문화' 다. 왕조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5,000년 역사에서 이렇게 된 것은 겨우 10년 안쪽이다."

- 건강이 안좋다는 말이 들린다. 근황은 어떤지.

"옛날 책들을 되풀이해 읽고 있다. 인간적인 근황은 특별한 것이 없고, 그냥 생존해 있다. 건강은 집필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는 된다. 조깅은 못하지만 집 주위 운동장을 하루 30~40분씩 걷는다."

- 대학을 마치지 못했는데(서울법대 중퇴) 왜 그랬나.

"내가 얼뜬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 월남한 뒤 동작이 빠르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학교도 못갔을 땐데 부모님은 나를 고등학교 넣어주고 박봉을 털어 매 학기 대학 등록금을 대줬다. 당시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평범한 서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것이 내 속에 형성돼 있지 못했다. 그 때의 내가 너무 밉다. 한 터럭 위안이라면 미국 사시는 아버님이 몇 년 전 서울에 오셨을 때 마침 동창회에서 내게 '자랑스런 서울법대인상'을 준 것이다."

- 월남 작가로서 통일에 대한 생각은.

"통일보다는 평화 유지가 더 중요하다. 한 쪽이 다른 쪽을 무력으로 설득하겠다는 미련을 끊어버리는 것이 좋다. 평화의 새 둥지 안에서 서로 자기 체제의 가장 선두가 되는 국가가 되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새가 나올 것이다. 결국에는 나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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