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핸드볼 선수인 박해숙(14ㆍ가명)양은 올해 3월 봄소풍 때만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아버지뻘 되는 40대 감독에게 "벚꽃 필 때 하루만 소풍 가자"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감독은 "너희가 뽀뽀를 해주면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박양 등이 거부하자, 뽀뽀를 안 하면 소풍은커녕 야간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박양과 친구 10여명은 '뽀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횡포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제자를 한 명씩 코트로 데리고 나간 뒤 수비 요령을 가르친다며 옆구리와 가슴을 만졌다. 박양은 "처음에는 실수인줄 알았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그랬다"고 말했다. 감독은 또 제자들의 합숙소까지 찾아와서는, 야릇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흰머리 뽑아라, 다리 주물러라, 어깨 주물러라"는 요구를 일삼았다.
박양과 친구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여자 코치에게 상담했지만 "그냥 실수다. 감독 선생이 또 그러면 요령껏 피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학원 스포츠 현장이 여전히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중ㆍ고교 남녀 운동선수 1,1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9일 내놓은 실태자료에 따르면 운동선수 학생 10명 중 8명 꼴로 감독이나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폭력 피해도 심각해 10명 중 6명이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했는데, 강간을 당하거나 강제적 성관계를 요구받은 사례도 29건에 달했다. 중ㆍ고교 운동선수의 인권 침해 실태를 분석한 종합 보고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농구 선수인 임빛나(중3ㆍ가명)양은 인권위 조사에서 "함께 훈련하던 초등학교 1학년 동생들이 감독님 폭행을 피하다가 고막이 터져 수술 받은 일이 있었다"며 "감독님도 이제는 때리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사흘 뒤 '훈련 중 미끄러졌다'고 선수들을 때렸다"고 털어놓았다.
감독이 선배를 때리면, 선배가 화풀이 식으로 후배를 때리는 폭력의 '재생산' 구조도 확인됐다. 특히 상당수 지도자들은 주장 선수만 본보기로 구타한 뒤, 선배 운동선수들이 후배를 체벌하게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구선수인 오석훈(고3ㆍ가명) 군은 "감독한테 혼난 선배가 똑같은 방식으로 머리를 땅에 박게 한 뒤 몽둥이로 구타할 때는 정말 끔찍했다"고 떠올렸다. 양궁선수 심미란(고1ㆍ가명)양도 "합숙소 안에 있는 칼을 치우지 않았다고, 선배가 칼을 집어 나에게 겨냥해 던졌다"고 털어놓았다.
남학생 사이의 성추행 문제도 지적됐다. 배구 선수 민창선(중2ㆍ가명)군은 "합숙소에서 쉬고 있으면 한 선배가 옷을 벗기고 몸과 성기를 만진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선배에게 항의하면, '나도 예전에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야 한다'며 계속 만진다"고 덧붙였다. 조사관이 '이런 사실을 담당 교사가 아느냐'고 묻자, 민군은 "선생님도 그러시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수업 결손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기가 없으면 하루 평균 4.4시간 정도 참여하지만, 경기가 있으면 2시간만 수업을 받고 남는 시간은 훈련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고2 학생이 덧셈이나 뺄셈도 제대로 못하는 등 대부분 선수가 기초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골프 선수로 나선 엄지숙(고2ㆍ가명)양은 "대입 준비를 위해 최근 과외를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더하기 빼기부터 해야 한다'는 말을 농담으로 듣고 분수 단원부터 시작해 너무 창피했다"고 말했다.
인권위 문경란 상임위원은 "학교 스포츠 현장에서 인권 침해는 매우 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며 "피해자에 대해 신고부터 상담 치유까지 총괄하는 원스톱 지원 등 구체적인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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