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낮 서울 신문로에 있는 서울시교육청 앞. 문을 나서던 A고 교장은 "별 수 없었다"고 말한뒤 발길을 급히 돌렸다. 시교육청이 240개 고교 교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과서 연수'를 받은 직후였다.
궁금증이 더해졌다. 일주일이 지난 17일, A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교육청이 이번엔 고교생 대상으로 역사 특강을 하기로 했다는 계획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이전과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지만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정부와 교육청이 저리 야단인데, 학교들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 시교육청이 좌편향 교과서 논란의 한 복판에 뛰어든 이유는 이랬다. 청소년의 역사 교육을 직접 챙기겠다는 발상은 교육 당국의 당연한 책무라고 해두자. 그렇더라도 시교육청의 의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17일 마감된 특강 강사 명단 공개를 거부한 것 부터가 석연치 않다. 취지가 옳았다면 누가 가르칠 지 밝혔어야 했다. "특정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들만 대거 선정됐기 때문"이라는 의혹은 그래서 나온다.
시계를 다시 교과서 연수 시점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시교육청 담당 과장은 "학교장 의견이 학교운영위원회와 다를 때에는 교육청에 보고해 달라"고 했다. 학운위 심의 사항을 교장이 추인하는 검정교과서 선정 관례는 철저히 무시한 발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 지역 고교 교장들 사이에서는 "시어머니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시교육청으로 바뀌었다"는 비아냥 마저 나온다. 학교 입장에선 인사ㆍ예산권을 틀어쥐고 있는 시교육청의 한 마디가 사실상 압력이지만,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교과서가 특정 이념에 치우쳐져 있느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틈만 나면 막강한 권한을 빌미로 교육 현장의 자율을 억누르려는 당국의 그릇된 행태가 더 큰 문제다.
김이삭 사회부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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