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9월 기획연구에 착수, 세부 항목별 토론회와 전문가 워크숍,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 등을 거쳐 구체화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방안을 18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1차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는 사업 추진 자체가 우려될 정도였다. 과학과 비즈니스의 융합이라는 개념부터 혼란스러웠고, 가속기 건설의 경제성과 조건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도 못했다. 이런데도 벨트 유치를 둘러싼 지역 경쟁은 이미 표면화했다.
● '벨트' 개념 오리무중
공청회에서 사업의 핵심인 아시아기초과학연구원(ABSI)과 가속기 신설에 일부 과학자는 의구심을 표하고, 경제학자는 적극 찬성하는 기이한 모습이 드러났다. 근본적으로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개념이 모호한 탓이다.
토론자인 김선근 대전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가속기(LHC)의 예를 들며 "대형시설이 있어야 중요한 연구자들이 몰려든다"며 가속기 건설을 적극 지지했다. 그는 또 "산업계가 주도해서 과학을 이끌어야 실리콘밸리처럼 성공적인 비즈니스벨트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공계 연구자들은 가속기를 이용해 기초연구는 할 수 있겠지만 당장 무엇을 사업화하자는 것인지 당혹해했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민경찬(연세대 수학과 교수) 대표는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쯤 가속기가 완공될텐데 (단기 사업화에 매달리면)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청중석에서는 "그냥 가속기 연구소를 짓는다고 하지 왜 과학비즈니스벨트라고 해서 논의를 복잡하게 하느냐"는 반문마저 나왔다.
● 왜 가속기여야 하는가
가속기와 ABSI의 필요성 자체도 합의가 어려웠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금동화 원장은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대형 시설은 필요하나 왜 가속기여야 하느냐"며 "미래의 과제가 환경 문제냐 우주의 원리 규명이냐를 먼저 논의하고 필요 시설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물리학회 김정구(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회장도 "ABSI의 연구 후보로 논의되는 과제를 보면 이미 연구소들이 하고 있는 것들도 많아 이런 것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 유치 경쟁부터 불붙어
이런 상황인데도 청중들은 "비즈니스벨트는 이미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대덕특구가 아니면 안 된다" "포항 방사광가속기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다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며 예민한 지역 감정을 내보였다.
과학계는 가능한 정부 지원이라는 선물을 차버리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그러나 과학비즈니스벨트의 개념을 먼저 정교하게 정립하지 않는 한 구체적인 논의는 헛돌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과학과 비즈니스가 융합된 글로벌 성장 거점을 마련하자는 사업. 18일 발표된 안에 따르면 세계적 석학을 불러모을 수 있는 대형 연구시설로 9,000억원을 들여 방사광가속기와 중이온가속기를 짓고, 50개팀 3,000명으로 구성된 아시아기초과학연구원(ABSI)을 신설한다. 또 외국인 거주여건을 조성하고, 기업ㆍ연구소를 유치해 기술사업화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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