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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계경제, 혼돈의 한국경제-경제원로에게 길을 묻는다] <5.끝> 김병주 서강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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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계경제, 혼돈의 한국경제-경제원로에게 길을 묻는다] <5.끝> 김병주 서강대명예교수

입력
2008.11.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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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69) 서강대 명예교수는 요즘 '국민금융교육의 전도사'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 금융경제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혔던 그가 경제교육, 금융교육을 학문적 종착점으로 삼았다는 것은 아주 시사적이고 함축적인 대목이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자교육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경제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국민의 금융문명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최근 G20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끝난 G20 회의는 기대보다 알맹이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번 위기는 대공황 이후 처음입니다. 경제질서로 치면 대공황의 결과로 생긴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64년만에 새 판을 짤 계기인 셈입니다. 단 브레튼우즈는 2년을 준비한 끝에 탄생했지만 이번 G20 회의는 불과 2주 만에 열리는 겁니다.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를 만드는 시작일 뿐으로 봅니다."

- 하지만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20개나 되는 나라가 모여 어떤 실질적 합의점을 도출한다는 게 가능한 얘기인가요.

"이번 G20 회의를 두고 애초부터 회의론이 많았지만 기본적인 의제설정이 됐고 내년 3월말까지 1차 논의 기간도 정해졌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번 회의가 '경제권력 이동을 표기했다'면서 '그 정도면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더군요."

- 우리나라가 G20 안에서 실질적으로 설 땅이 있을까요. 정부는 '가교역할'을 자임했는데, 그게 말처럼 될 수 있는 것인지…

"이번 논의가 잘 안되면 자칫 G14, G7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선 G20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그 안에 확실히 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2010년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은 절호의 기회입니다. G20 안에서 새로 짜여질 국제 금융질서에 한국이 주역으로 서야 합니다. 당분간 이런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관련 주요 보직에 최적의 인재를 배치해야 합니다."

- 정부 뿐 아니라 국민의식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 론스타 같은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오히려 우리 금융발전을 발목 잡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요.

"(외국자본을) 완전히 풀어주자는 게 아니라, 부정적 인식을 계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금융지식과 정보 면에서 외국자본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국내시장에서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번번이 당할까요. 저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내 금융사들이 외국자본을 따라잡을라 치면 1차로 우리 감독당국이 '규정이 없다'며 제동을 겁니다.

1,2년 지나 감독당국이 '아, 이건 풀어줘야 겠구나'하고 나서도 그 다음에는 감사원, 검찰 같은 기관이 발목을 잡죠. 이들은 법률지식은 뛰어날 지 몰라도 금융지식은 모자랍니다.

그 뒤에는 또 정치권, 시민단체, 국민들이 걸고 넘어지죠. 뒤로 갈수록 애국심은 투철한데 때때로 국익과는 반대로 간다는 게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의 시장 수준은 국민들의 경제교육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금융문명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금융문명이란 표현이 재미있네요. 지금 맡고 계신 투자자교육재단 이사장 일도 같은 맥락인가요.

"평생 경제를 가르쳐왔지만 강의실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해야겠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죠. 그런 점에서 우리 옛날 얘기, 동화도 다시 써야 해요. 그래서 최근엔 놀부재테크라는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착한 흥부와 못된 놀부 가운데 누가 더 재테크 마인드가 있을까요. 흥부처럼 착하기만 한면 안 됩니다. 금융교육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 요즘 펀드 수익률이 고꾸라지면서 최근 감독당국이 펀드 불완전판매를 보상하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경제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이런 불만도 없어질까요.

"금융상품은 무엇보다 내게 맞는 지 알고 사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약관이 너무 복잡해요. 저도 펀드 사러 가서 '좀 간략히 설명해 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망설이는 고객을 금융사 직원이 꼬드겼다면 문제겠지만 옆 사람 사는 걸 보고 무작정 '나도 주세요' 했다면 역시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파워인컴펀드 보상 조치는 썩 잘한 결정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더 생기면 금융사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겁니다. 일종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고 할까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분명한 기준을 세워 엄밀히 가려낸 뒤 선별적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일부 키코 가입 기업이나 파생상품 투자자처럼 투기성 투자까지 책임져서는 안됩니다."

- 금융권 얘기를 좀 해 볼까요. 요즘 은행湧?외화조달난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는데요.

"요즘은 좀 특별한 상황이지만 원래부터도 외국 기관들이 국내 은행들에게는 1년 이상 대출을 잘 안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대신 만기연장을 자주 하는 형태라는 얘기죠. 여기에는 평소 국내 금융권 인사들의 외국과의 소통 부족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런던, 뉴욕의 금융계 거물들과 수시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는 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번 한ㆍ미 통화스와프 때도 씨티은행 부회장 등의 도움을 받았다지 않습니까. 은행들도 규모에 맞게 외국인, 여성 등으로 간부 구성도 다양화 해야 합니다. 금융은 결국 신용, 네트워크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융사 CEO는 되도록 장기 연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 지난 정부부터 '한국경제의 위기는 리더십 실종 때문이다' '대통령은 결국 경제로 평가받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현 정부는 잘하고 있는 겁니까.

"경제를 슬로건으로 당선은 됐지만 외부로부터 대단한 악조건을 떠안은 상황입니다. 문제는 인사에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못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축구할 때는 축구를 제일 잘 하는 사람들도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를 위해 뛰는 선수들이 과연 대표선수들이냐는 데 의문이 듭니다. 나름 열심히 하겠지만 시장에서 신뢰를 잃는 언행이 적지 않아서 리더십이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강만수 장관을 포함한 현 경제팀이 '대표선수'감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본인은 최선을 다한다고 하겠지만 누구든지 자신을 임명한 사람에게 부담이 되면 안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구요. 지금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뿐 아니라 G20회의에서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내가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일 지를 잘 생각해야죠".

- 요즘 수도권규제완화 문제를 놓고 시끄럽습니다. 찬반논란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도 어차피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을 것 같다는데 있습니다.

"지금은 무리한 투자를 안 한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측면도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한번 투자규모도 큰데다 상품 유행도 수시로 바뀌어 투자 위험이 갈수록 커집니다. 당연히 망설일 수 밖에 없죠. 이제는 투자도 눈에 안보이는 사람, 연구개발에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정부가 되는 것, 안되는 것을 알아서 정하려 하지 말고 연구개발 투자에 감세를 해 주는 등 최적의 환경만 제공하면 됩니다. 결정은 기업이 하게 둬야죠."

- 그럼 기업들이 투자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자는 말씀인가요.

"기업들도 문제가 있어요. 외환위기 후 재무구조는 좋아졌지만 기업가들의 창의력이나 도전정신은 훨씬 죽었어요. 이래서는 정주영, 이병철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기 어렵죠. 기업들도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모험에 대한 과감한 보상을 약속하고 국민들은 기다려줘야 합니다."

- 기업들의 연쇄부도 우려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을 다 살릴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구조조정을 해야죠. '창조적 파괴'가 필요합니다. 그걸 선별하는 기준은 거래 은행이 제일 잘 압니다. 정부도 처음에는 은행을 압박하며 다 살리라고 하다가 요즘은 살릴 기업은 살리라고 바뀌었는데 맞는 방향이라고 봅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과 은행이 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끝으로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신뢰받는 사람, 신뢰받는 정책, 그리고 신뢰감있는 집행이 이뤄져야 합니다. 요즘 같은 때 시장에서 외면당하면 정말 곤란하죠".

◆ 김병주 교수는

한국 금융정책의 이론과 실제에 두루 정통한 경제학계 원로다. 금융통화운영위원을 비롯, 재무부 금융발전심의회ㆍ세제발전심의회 위원, 금융개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내며 실제 정책 수립에도 기여했다. 최근에는 한국투자자교육재단 이사장으로 국민적 경제교육에 힘쓰고 있다.

◇ 약력

▲1939년 경북 상주 생 ▲경복고ㆍ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1970~2004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재무부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금융개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현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ㆍ한국투자자교육재단 이사장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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