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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네르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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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네르바의 추억

입력
2008.11.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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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공예를 뜻하는 그리스의 여신 아테나(Athena)는 로마에서 미네르바(Minerva)로 불렸다. 이 말이 결정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난다'라고 알 듯 모를 듯한 글귀를 남기면서부터다. 이 글귀의 해석은 다양하지만 미네르바가 아끼고 좋아해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을 뜻한다.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것은 헤겔의 역사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흔히 '역사의 실제적인 진행이 끝난 후에 정신이 변증법적 완성을 해 결국 진정한 시대정신이 탄생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 이런 난해하고 중층적 의미를 지닌 미네르바를 필명으로 써온 다음 아고라의 사이버 경제논객이 지난 주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이제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한국에서 경제 예측을 하는 것도 불법 사유라니…입 닥치고 사는 수밖에"라며 최근 자신을 수사대상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겨냥하며 "이제 용도폐기된 구식경제학이 판치는 한국에 남은 것은 30년의 암흑뿐"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또 서둘러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워두면 3년 후 그 뜻을 알 것이라는 비아냥도 덧붙였다.

▦ 그는 그 동안 "MB노믹스는 못 가진 자들의 희생 위에 가진 자들의 바벨탑을 쌓겠다는 것"이라는 취지로 정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최근의 금융위기와 주가지수 500선 붕괴를 전망해 성가를 높였다. 한나라당이 대정부질문에서 "검증되지 않은 문제와 주장들이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다"며 당국의 조치를 공개요구하자 법무장관이 "내용이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되면 당연히 수사할 것"이라고 손뼉을 마주친 이유다. 실제로 이후 정보당국은 증권사 실무경험이 있는 50대 초반으로 미네르바의 신원을 특정했다.

▦ 이런 압박이 결국 그를 절필로 내몬 셈인데, 솔직히 여권의 편협함과 방자함이 놀랍다. 나름의 관점과 이론으로 세상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첫 장이다. 설사 그것이 악의적 요설(饒說)이라 해도 '공개 의견'을 법의 심판대에 올린 것은 야만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엊그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브리핑에 게재한 '경제난국을 제2의 국운융성의 기회로'라는 글에서 정부와 국민과의 정책 소통과 협조를 강조하며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걸어다니는 홍보매체, 홍보사이트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기들은 연애고 남은 불륜인가.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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