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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중국을 사랑한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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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중국을 사랑한 미국인

입력
2008.11.2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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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베이징(北京)대와 칭화(淸華)대의 전신 옌칭(燕京)대를 설립한 한 미국인이 세상을 뜬지 46년 만에 중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이뤘다. 그가 중국에 묻히고 싶었던 이유는 중국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1949년 중국에서 공산당이 집권하기 전 마지막 주중 미국 대사를 지낸 존 레이튼 스튜어트씨가 주인공.

1876년 항저우(杭州)의 미국인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회고록에서 "중국인들은 중국에 대한 나의 사랑과 그들의 복지에 대한 나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중국에 애정을 보였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나중에 중국 공산당 정부의 지시에 의해 베이징대와 칭화대로 분산 흡수된 옌칭대를 공동 설립, 중국인들에 대한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스튜어트씨는 1962년 미국에서 타계할 때 자신의 유해를 아내가 묻힌 베이징의 대학 묘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후손들은 유언에 따라 유해를 베이징으로 옮기려 했다. 그렇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스튜어트는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편을 들었다고 지목한데다 '미국의 대중국 침략정책의 완전한 실패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회고록에 기록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뜻이 간절하면 이뤄지는 법. 중국 국가 부주석 시진핑(習近平)이 2006년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 파티에서 중국계 미국 육군 소장 존 푸를 만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미국 육군 장성에 오른 첫 중국계로, 그의 아버지가 스튜어트의 비서를 지냈던 푸는 시진핑에게 스튜어트 이야기를 꺼내며 그의 유해를 중국에 묻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푸는 이 일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라고 판단, 유해를 수도 베이징 대신 항저우로 옮기겠다고 제안했으며 시진핑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스튜어트는 중국 땅에 묻히게 됐다. 스튜어트의 중국 사랑에 새삼 감동한 항저우시는 그의 생가를 박물관으로 꾸미기도 했다.

17일 항저우에서 열린 하관식에서 클라크 랜트 주중 미국 대사는 "스튜어트가 중국에 대학을 설립한 뒤 지금은 많은 중국 학생이 미국에서, 또 많은 미국 학생이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튜어트는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관식에는 옌칭대 졸업생들이 참석해 삼배를 올리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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