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청 하급 공무원이 영화 같은 수법으로 수십 억원의 국비를 차명계좌로 빼돌려 홍콩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공무원은 출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계좌이체를 통해 횡령을 계속했으며, 강원도는 공무원이 해외로 도주할 때까지 범행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영화 같은 범행
강원도청 산하 감자종자진흥원 회계담당 공무원 이모(35ㆍ8급)씨가 감자 저장창고 신축 공사비 22억7,000만원을 차명계좌로 빼돌린 것은 14일 오후 4시57분.
이씨는 강원도 자금담당자가 오후 4시37분 감자종자진흥원 공금 통장으로 국비를 입금하자마자 "아이가 아프다"며 자리를 뜬 뒤 은행으로 달려가 미리 훔친 담당계장의 직인과 인감으로 이체의뢰서를 작성해 전액을 타인 명의의 계좌로 이체했다.
이씨가 22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아 여러 계좌로 분산 이체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14분에 불과해 수사 담당자들도 혀를 내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다음 날도 첩보영화에서나 봄 직한 행각을 되풀이했다. 이씨는 14일 오전 8시30분께 인천공항에서 홍콩으로 출국하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차명으로 빼돌린 자금 중 4억4,700여만원을 인터넷 뱅킹을 통해 또 다른 5개의 차명계좌로 분산 이체했다.
이씨는 이에 앞서 9∼11월에도 11차례에 걸쳐 감자종자진흥원 운영자금 3억1,000여 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현재 이씨가 횡령한 것으로 확인된 금액은 모두 7억5,25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씨가 홍콩거주 김모(여)씨 계좌에 이체한 20억7,000만원을 지급 정지했다고 밝혔으나 이미 인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씨는 홍콩이나 마카오를 자주 왕래하며 2억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경찰은 이씨가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이씨의 신병확보에 나서는 한편, 내부에 공범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관련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 구멍 뚫린 국가예산
이씨가 이처럼 공금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었던 것은 허술한 예산관리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원도는 횡령을 막기위해 직인과 인감을 이원화해 관리하고 있으나 실상은 예산담당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방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사후 보고나 일일, 또는 월말 결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도 이 같은 횡령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계좌이체를 반복하는 수법으로 수사기관의 자금추적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관공서의 직인과 인감을 담당자가 아무 때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무사안일 한 관행과 첨단 금융시스템이 어우러지면서 영화 같은 범죄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평창=곽영승 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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