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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쟁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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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쟁반탑

입력
2008.11.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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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 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합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

통도사에 가면 보물 제471호 봉발탑이 있다. 부처님의 발우 모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인데, 부처님 입멸 후에 오실 미륵부처에게 법을 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밥그릇을 받들고 있는 봉발탑이 와글거리는 시장 한복판에 나타났다. 이름하여 쟁반탑이다.

이 탑은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형물 중의 하나로 통한다. 그리고 목탑이나 석탑 혹은 철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양식으로서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그 특징으로 한다. 또한 피사의 사탑처럼 아슬아슬하나 결코 무너져내리는 법이 없다. 이 탑은 어떤 고비를 만나도 균형을 잡을 수 있을 때 노동의 고통이 춤의 신명으로 바뀐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양은 쟁반 옥개석을 5층까지 차곡차곡 포개 얹고 붐비는 시장 골목을 걸어다니는 탑 속의 사리는 쌀이다. 어떤 고승의 사리보다 더 빛나는 진신사리가 쌀이 아니던가. 하늘과 대지와 인간이 한 몸이 되어 남긴 사리알. 고요한 산중에서 시정의 한복판으로 내려와 출출한 중생의 시장기를 달래주는 쟁반탑에 경배한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이 탑은 중생의 시장기 앞에서만 자신을 무너뜨린다. 저 탑 속의 사리를 먹고 나도 ‘향그런’ 탑을 쌓으리라.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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