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태용 "문학이 날 세상으로 걸어 나오게 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태용 "문학이 날 세상으로 걸어 나오게 해"

입력
2008.11.17 00:09
0 0

■ 수상소감/ 나의 글쓰기는…

"올 것이 왔네. 그런데 너무 빨리 온 거 아니야?"

내로라하는 선ㆍ후배들을 제치고 김태용(34)씨가 제41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11일 밤.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김씨의 아내 서진희(37)씨의 첫 반응은 그랬다. 그랬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씨가 참여하고 있는 문학동인인 '루'의 선ㆍ후배들은 아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거짓말 하지 마" "잠이 확 깬다." "어어어…"

경력(등단 4년차)으로나 경향으로나 그는 한국문단의 '신예'이자 '비주류'다. 자의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단절적인 문장들,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단어들, 머리 속을 난타하는 편집증적 이미지들.

김씨는 2005년 등단한 뒤 몇 차례 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긴 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후보로 오른 뒤에도 그는 스스로 "젊은 작가 중 특이한 친구 한 명 있구나, 예심 심사위원들이 한 번 본심에 올려보자는 생각이었겠지"라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제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씨가 말하는 수상 소감이다.

운명의 장난일까. 그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고교 시절 가방에 넣고 다니던 이성복, 최승자, 오규원씨 같은 이들의 시집이 아니라 레오 카락스의 영화였다. 그가 회고하는 군 복무 시절.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레오 카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개봉에 맞춰 일부러 휴가를 늦췄는데, 하필이면 그 주말에 그 일이 있었죠."

군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카락스의 영화 때문에 휴가를 늦춘 주말 밤 폭발물 사고를 당했다. 온몸 80%에 화상을 입었고 10차례의 수술을 받은 뒤 10개월이나 늦게 의가사 제대를 했다. 제대 후 1년 동안 햇빛을 보면 안돼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무기력했죠.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살도 시도했었어요."

그때 그를 세상으로 다시 걸어나오게 한 것이 문학이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형과 함께 김씨는 그때 하루 5편의 영화를 소화했다. 이와이 ??지의 '러브레터' 같은 영화를 불법복제해 용돈을 벌기도 했다.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문학이냐 영화냐 하는 갈림길에서 그가 택한 것은 치유의 수단으로서의 문학이었다. 상처는 서서히 회복됐다.

처음부터 실험적 글쓰기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습작기에는 리얼리즘 소설을 썼죠. 운동권 얘기도 썼구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아내는 지금 소설보다 그때 습작들이 더 재밌다고 하긴 해요. 하하하."

'언어와 사물의 관계'라는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고교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시에 대한 애정 때문인 것같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문학의 핵심은 언어인데, 시가 언어 자체에 집중하는 반면, 소설은 이야기에 관심을 품잖아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 말놀이를 하다보니 창작의 쾌감이란 게 이런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죠." 이른바 반서사, 해체적 글쓰기를 선보인 첫 단편 '오른쪽에서 세번째 집'을 발표했을 무렵, 주변에서는 만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단계였지만, 예상 밖으로 문예지로부터 원고 청탁이 줄을 이었다. 등단작을 내고 불과 2년 만에 10편의 단편을 토해냈다.

문단 일각에서는 서사가 사라지고 파편적 이미지만 강조되는 김씨의 소설을 놓고 '소설이 가야 할 길이 이쪽인가?' 하는 걱정도 많다는 말을 던져봤다. "소설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어떤 형식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은 일종의 억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도 일종의 예술이라면 예술은 억압을 깨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씨의 반론은 이어졌다.

"기괴하고 난해한 소설을 쓰는 것이 제 목표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날의 예술가가 해야 할 일,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주는 일을 소설로 시도할 뿐이지요. '염려'는 할 수 있지만 '이 길이 아니다'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의 소설에 가장 짙게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기성의 권위, 기성의 권력을 상징합니다"라는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염원하는 듯한 그의 소설은 개인사와도 얽혀있다.

반복된 사업실패로 폭음을 일삼던, 가끔씩 집을 비우시기도 했던 아버지. 이제 신앙에 귀의한 성실한 생활인인 아버지는 아들의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식에 "기도의 힘 덕택이야" 라며 다른 누구보다도 기뻐하셨다고 그는 전했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 홍제동, 한 달에 16만원 하는 1.5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작업을 한다. 글이 잘 풀리지 않아 방에 몸을 대각선으로 누이고 토막잠을 잘 때마다 악몽을 꾸? 그 꿈에서 떠오른 기이한 이미지들이 그를 소설로 밀고 간다고 했다.

이번 수상으로 그는 한층 더 '손이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작가들을 순수하게 격려하는 한국일보문학상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런 무대를 마련해주신 만큼 이제 그 무대에서 마음껏 놀아볼 생각입니다."

● 프로필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입학

▲2008년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오른쪽 세번째 집' 발표하며 등단

▲2007년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출간

▲현재 계간 '자음과 모음'에 장편 '숨김 없이 남김 없이' 연재 중

■ 심사평/ 왜 김태용인가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임하면서 우리는 수월성뿐만 아니라 참신성에도 주목한 이 문학상의 전통에 따라 심사기준을 정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을 안심시킬 작품보다는 통념을 반성케 하는 작품, 수상을 계기로 기왕의 실력을 재확인할 작가보다는 소설의 미래를 짊어질 작가에게 주목하기로 했다.

예심을 통과한 장편 2권, 소설집 8권을 검토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공인될 가치가 있는 참신성이라는 기준이 정해진 만큼 최종 후보를 고르기가 어렵진 않았다.

역사와 픽션의 결합에 능하나 그 방면으로 이미 정평을 얻은 저자의 작품, 역설과 전도에 밝은 눈으로 연애와 결혼 풍속을 다루었으나 구식 서사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 철학적 허구에 의욕을 보였지만 억지스런 관념의 퍼즐에 그친 작품, 문화소비 행위를 기발하게 해석하고 있으나 작법이 예술적이라기보다 공학적인 작품 등은 논외가 되었다.

끝까지 남은 것은 윤이형, 황정은, 김태용 세 사람의 소설집이다.

윤이형은 신인 작가가 대개 그렇듯 자기세대의 특수성에 밀착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전자통신복제문화에 둘러싸여 성장한 젊은이의 경험을 다루면서 그 경험에 적합한 언어를 바로 그 문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인터넷게임이나 디제잉은 작중인물들에게 친근한 놀이 또는 직업이자 그들의 삶과 관련하여 어떤 진실을 계시하는 메타포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워크래프트'는 인간 현실의 축도가 되고, '크로스페이더'는 지혜로운 인생 기술이 된다.

자기세대의 문화 내에서 자기세대를 위한 삶의 메타포를 발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메타포의 출처가 되는 그 문화에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떤 문화의 내부에 갇혀 있는, 그 문화의 패턴과 서사를 반복하는 소설에 대해서는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황정은의 단편은 특별히 돋보였다. 인간이 물건이나 동물로 변하는 그 변신 이야기는 환상에 대한 애착을 가히 만화적인 무법(無法)의 경지로 밀어붙이는 동시에, 친숙한 것과 친숙하지 않은 것의 접경지대, 즉 섬뜩함(the uncanny)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얼핏 보면 황당한 작중인물들의 변신은 그들의 세계를 규정하는 언어의 공허함, 의미의 소멸에 대한 인식과 통한다. 황정은 소설은 현대 하층민이 겪는 빈곤, 불안,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속류 사회학으로 기우는 대신, 존재로부터 의미가 증발한 사태를 상기시키고 침묵과 죽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아쉽게도 구성의 허술함 등의 이유에서 수상작이 되지 못했다.

황정은이 환상의 회로를 따라 언어의 외부로 비월한 반면, 김태용은 무의미한 언어의 세계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감각의 행보는 더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소설은 과거에 선례가 적지 않은, 개인의 불우한 의식에 대한 정교한 묘사 문체에 경도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문체는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도발적인 배리(背理)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언어-아버지-문화의 몰락이라는 상황을 그 자체 내에 구현한다. 이것은 범상치 않은 메타언어적, 메타픽션적 실천이다. 김태용 소설의 행로에는 언어에 반하는 언어, 서사에 반하는 서사가 열려 있다. 수상을 축하하며 분발을 바란다.

●심사위원= 김윤식ㆍ 김원일ㆍ황종연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