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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인(美人)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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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인(美人) 이야기

입력
2008.11.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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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컴퓨터 앞에 앉아 강의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귀가했다. 부랴부랴 대단한 보물이라도 꺼내놓듯 남편은 조심스레 포장지를 벗기고 자사호(紫沙壺) 하나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여자네?" 한마디 했는데, "그렇지? 그렇지? 맞아! 이게 미인견이라는 호(壺)인데 당신은 알아 보는구나!"

좁게 살포시 내려앉은 어깨선과 물대의 모양이 매끈한 여인의 다리 같기도 하고, 과하지 않은 곡선의 차호(茶壺)에서 여성스러움이 느껴져 한마디 한 건데, 생각의 일치에 대해 남편의 기쁨이 크다. 미인견(美人肩), 미인이라.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가 생각난다.

검고 커다란 가체 아래여서 더 희고 작게 느껴지는 얼굴과 다소곳 내려앉아 좁고 가냘픈 어깨가 남편이 들고 온 자사호의 모습과 닮았다. 한번 입으면 솔기를 뜯지 않고는 벗기가 어려워 보이는 좁은 소매와, 허리가리개만 없었더라면 젖가슴이 드러날 만큼 짧아진 삼회장저고리가 상체를 더욱 작아 보이게 한다. 그에 반하여 정성스레 주름잡은 폭넓은 항아리모양의 치마는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조선조 복식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치마단 아래로 살짝 내딛은 유백색 버선코는 묘한 여운을 전한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손에 먼저 시선이 가는 듯 하나 이내 눈길은 속적삼을 여미었을 빨간 끈으로 옮겨져 은근히 섹시함도 느낀다. 외까풀 눈과 오뚝하지도 않은 콧날이 현대의 미인상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미인도임이 틀림없다.

조선의 미인을 생각하다 보니 이번엔 미인의 대명사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가 떠오른다. 우리에게 클레오파트라는 아름다운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열연한 영화로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 클레오파트라는 150㎝의 작은 키에 매부리코와 엉성한 치아를 가진 평범한 얼굴로 전한다. 오늘날의 미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인이라 치켜세우는 이유로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녀가 말하는 방법이나 몸놀림에 독특한 매력이 있었으며 문학, 철학, 역사학 등 박식한 지식을 갖춘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미인의 조건은 단순한 외형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에서 기생 정향은 그녀의 가야금 연주를 알아봐주고 기생임을 떠나 한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신윤복에 의해 더없는 미인으로 거듭난다. 신윤복을 바라볼 때 그녀는 더욱 빼어난 연주로 교양 있고 기품 있는 미인으로 분한다. 역사 속 그 인물 뿐이랴. 영광의 상처로 못생긴 발을 갖고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과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 장미란까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미인들이다.

결국 미인은 외면 이전에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빛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빛은 색(色)이다. 낯빛은 안색이니 모두 색을 얘기하는 것이다. 여색은 여인의 색이고 빛이다. 통속적인 여자와의 육체적 관계를 뜻하는 여색이 아니라, 여성의 아름다운 자태와 빛이다. 이러한 빛은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장기가 좋지 않으면 안색이 나쁘듯 내면이 예쁘지 않으면 광채가 날 리 없다.

따라서 여인의 빛. 여색이 출중한 여인의 내면은 아름답다. 빛은 눈빛에서, 때로는 목소리에서, 미소에서, 일에 대한 능력에서,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보인다. 그것이 교양이든 심성이든 능력이든 간에 미인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고, 사랑 받기 위해 내면의 빛을 쌓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이 세상은 미인으로 넘치지 않을까 싶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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