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질문을 던진 것은 그였다. 18일부터 23일까지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 원작의 연극 '고곤의 선물'(연출 구태환)에서 주인공 에드워드 담슨을 연기할 배우 정동환(59)씨는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희곡을 읽었는지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이 연극에 참여하는 자신의 뜻을 알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2003년 한국 초연(연출 성준현) 때 같은 역을 맡았던 그는 "분명 초연보다 쉽게 풀었으되 말할 수 없이 많은 뜻을 내포한 어려운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그것이 TV와 영화 활동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정씨가 연극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 수십 편씩 새로운 작품이 무대에 오르내리는 대학로에도 이런 작품 하나 정도는 버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고 즐기는 공연이라면 나 말고도 할 사람은 많죠. 편하게 생각하면 그냥 연극을 안 하면 되겠지만 진지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연극을 하는 게 내 소명이라 믿으니까."
'고곤의 선물'은 한 천재 극작가의 죽음을 통해 예술과 인간의 본질을 말하는 연극이다.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의 변사체를 놓고 그의 두 번째 아내 헬렌과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필립 담슨은 과거를 추적해 간다.
고곤(Gorgon)은 그리스 신화 속 바라만 봐도 돌로 변해버리는 메두사를 칭하는 말로, 연극은 신화를 차용한 극중극 형식이다. 테러와 국가 간의 문제, 복수, 신화, 예술 등 여러 주제를 넘나들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연극에 관한 것으로 귀결된다.
"에드워드가 되어 '연극은 죽었어'라고 말할 때는 정말 통곡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하지만 또 그 대사에는 '연극은 살아있다'는 저항이 담겨 있기도 하니까 감상적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되죠. 그냥 내 느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배우의 몫이기도 하고." 그렇게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 이는 정씨의 연기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자기를 죽이고 상대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 희생이 따르는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강조했다.
남산 드라마센터는 정씨가 1965년 유치진 선생이 주관한 학생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으며 데뷔한 바로 그 무대다. 그가 젊은 연극인과 함께 하는 도전적이고 치열한 작업을 선호하지만 문득문득 선배들이 쌓아온 전통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단 예술뿐 아니라 어떤 분야든 나로부터 개혁이 시작된다는 시각은 잘못된 거죠. 무엇이든 전통의 흐름 위에 있는 것이지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요즘 들어 연극계 원로들의 작품도 좀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는 TV나 영화에 비해 연극만큼은 주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작품에 출연해 왔다. '레이디 맥베스' '침향' 등 올해 출연작만 봐도 그렇다. '이 시대 광대로서 내가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케 하느냐가 그의 작품 선택의 기준인 까닭이다.
"삶과 인생을 연극만큼 연구하고 실험해서 창작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또 있나요? 에드워드의 대사처럼 연극은 영원히 죽지 않는 종교입니다. 연극은 곧 삶이고 삶은 연극인 거죠." 공연 문의 (02)889-3561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