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마련한 7,000억달러 규모의 금융구제안이 시행 한달 만에 전면 수정된다.
은행의 모기지 관련 부실채권 매입을 통해 금융기관을 정상화하겠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지만 은행들이 정부 지원금을 쌓아놓고도 대출을 억제, 경제 악화를 가중시키자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12일 구제금융이 소비 대출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정부가 금융기관 증자에 참여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아직 집행하지 않은 4,100억달러가 신용카드 융자나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융자, 주택압류자 구제 등 민간소비를 활성화하는데 사용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구제금융 가운데 의회의 승인을 받은 1차분 3,500억달러는 은행 부실채권 인수에 2,500억달러, AIG 구제에 400억달러가 각각 할당됐으며 나머지 600억달러는 재무부 수중에 남아있다.
의회가 조만간 2차분 3,500억달러의 집행을 승인할 것으로 보이지만 폴슨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남아있는 금액으로도 현정부 임기 내 필요자금을 댈 수 있다"고 밝혔다.
폴슨 장관은 당초 구제금융을 금융회사 증자 참여 즉 지분 투자에 사용하라는 의회의 요구에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대신 부실채권 인수를 추진했다.
그런 폴슨이 의회의 요구를 뒤늦게 받아들여 지분 투자에 나서기로 한 것은 부실채권 인수 가격 결정에 어려움이 드러난 데다 수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은행들은 구제금융은 쌓아둔 채 대출은 억제하고 수수료는 대폭 인상하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구제금융을 받은 9개 은행은 임직원에게 연말 성과급을 지급키로 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 3개 금융감독기관은 이를 보다 못해 "은행이 대출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며, 임원진의 보수 제한 등 은행 경영에는 우리가 적극 개입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은행 증자에 참여하면 해당 은행의 우선주를 확보하게 된다. 은행이 추후 정상화해 주가가 상승하면 구제금융 비용이 줄어드는데다 은행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도 제동을 걸 수 있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도 자본금이 커져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이 올라가면 대출여력이 확대돼 민간소비 회복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취한 구제금융 방안과 유사하다.
미국 재무부는 향후 구제금융 기금은 중소 은행과, 민간소비와 밀접한 보험 및 특수목적 금융회사 등 비은행 기관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한정된 재원에 자금 요청이 몰리자 매칭펀드 방식(해당 금융기관이나 새로운 투자자의 투자액 규모에 맞춰 정부가 구제금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 방식은 해당 금융기관의 자구노력을 강화하고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재무부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만큼 이번에는 신청이 활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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