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단풍이 곱게 물든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3리 서울시립묘지 내 어울림 동산. 협심증으로 9일 운명을 달리한 고(故) 김태영(62)씨의 영정을 든 아들 상준(31)씨 등 유족 1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부터 자연장(自然葬)이 시행되는데, 처음으로 오셨습니다. 자연장은 묘지나 납골과 달리 화장(火葬)한 유골가루(골분ㆍ骨粉)를 흙과 함께 섞어 꽃이나 잔디 밑 땅 속에 묻어 장사(葬事)하는 것입니다. 안장하시겠습니까."
심국종(53) 장묘문화사업단 공원묘지 관리소장의 설명에 유족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유족들은 새하얀 보자기에 곱게 싸인 고인의 유골가루를 한 줌씩 안장함에 넣은 뒤 마사토와 정성스럽게 섞었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아름다운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여보." 부인 강점순(57)씨와 아들 상준씨, 딸 정선(29)씨 등은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이제 흙으로 돌아가셔서 편히 눈을 감으세요."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다. "자, 이제 한 분씩 오셔서 한 줌씩 넣으세요."
유족들은 폭 15㎝, 깊이 40㎝ 크기로 파놓은 땅 속에 흙과 섞은 유골가루를 한 줌 한 줌 옮겼다. 비로소 땅과 한 몸이 된 고인은 안식을 되찾은 듯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10여분에 걸친 안장 의식을 치르는 동안, 유족들도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고인이 잠든 땅을 즈려 밟던 부인 강씨는 "납골당에 모시려고 했는데 자연장에 대해 듣고 나서 마음을 바꿨다"며 "골분을 옹기에도 담지 않고 그대로 땅 속에 묻어 '정말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들 상준씨와 딸 정선씨도 "아버지는 평소에도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면서 "자연장이 좋은 장례문화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렇게 서울시립묘지 내 첫 자연장의 주인공이 됐다.
서울시립묘지 내 1만2,410㎡ 규모의 자연장 부지에는 모두 1만6,000기를 안치할 수 있다. 대상은 서울시민과 경기 고양ㆍ파주 시민, 그리고 시립묘지에서 매장 후 개장(改葬)하거나 서울시립봉안시설에 안치된 유골로 한정된다.
자연장은 묘지나 납골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든다. 자연장지 사용기간 40년에 50만원이다. 국가유공자와 그 배우자,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는 반값만 받는다. 시립봉안당(납골당) 40년 사용료(150만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다만 골분을 묻은 곳에 비석 등 개인 표지를 설치할 수 없고, 공동제례단에 이름을 새기는 정도만 허용된다.
간암으로 숨진 고 진교식(59)씨 유족도 이날 서울시 노인복지과 심순의(55ㆍ여) 장사문화팀장과 김성연(41) 주임의 설명을 듣고서는 즉석에서 자연장으로 정했다.
유족 채광환(63), 재진(50)씨는 "여러 명의 골분을 한데 모아 뿌리는 집단 산골보다 훨씬 좋아 호응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장 시행 첫날, 이 곳에서는 3명이 '자연으로' 돌아가 영면(永眠)에 들었다.
서울시는 자연장지에 꽃과 나무, 잔디를 심어 공원화 할 계획이다. 김상한 노인복지과장은 "부족한 묘지 문제를 해결하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연장이 시대적 흐름"이라며 "많은 분들이 찾을 수 있는 친환경 공원으로 꾸미겠다"고 말했다.
앞서 광주와 인천이 8월부터 자연장을 시행하고 있고, 수원 부산 등 20여개 지방자치단체도 자연장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화장률은 58.9%로, 10년 전인 1997년(23.2%)에 비해 2.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서울의 화장률은 2000년 48.3%에서 2005년 64.9%로 크게 늘었으며, 2020년에는 91.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연장은 친환경, 경제성, 효율성 등 모든 면에서 기존 묘지나 납골보다 탁월해 향후 장사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립묘지 자연장 문의 (031)960-0235~7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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