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병…정신이 분열됐다고요? 어떻게 그런 병이 걸리나요?"
처음 진단을 했을 때 정신분열병 환자의 보호자들이 주로 나타내는 반응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 보여주던 납득할 수 없는 행동과 더불어 이 병명에서 더욱 놀라움과 절망감을 느낀다.
정신분열병이란 병명은 'schizophrenia'라는 영어 단어를 번역한 말인데, '분열'이라는 뜻의 'schizo'와 '횡경막'이라는 뜻의 'phrenia'가 합성된 단어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과거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 사람들은 횡경막 부근에 인간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환자들이 보이는 조리가 없는 말과 일관되지 않은 행동들, 현실감이 없는 생각들로 인해 이런 병명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말하자면 중세 유럽에서 정신질환자들을 귀신이 씌었다며 처형했던 '마녀 사냥'과 같이 정신병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만들어진 웃지 못할 병명인 것이다. 20세기 들어 뇌과학과 인지과학의 발전으로 뇌에서 어떻게 정신현상이 일어나고 어떤 증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가 상당 부분 밝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정신은 뇌에서 나오고, 정신분열병을 비롯한 정신질환 역시 뇌 기능의 이상에서 온다는 사실은 상식이 됐다. 특히 정신분열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가장 중요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막연히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이 주는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과 환자의 인격에 대한 부정적 의미 등등을 이유로 병명을 바꾸자는 주장이 학계나 환자, 보호자 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대한정신분열병학회(학회 이름도 바꿀 때가 됐다)에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나 보호자의 50% 정도, 일반인이나 정신과의사의 70% 정도가 병명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일본은 2002년 정신분열병을 '統合失調症(통합실조증)'으로 바꾸었고, 홍콩 역시 최근 '思覺失調症(사각실조증)'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앞으로 3~4년 내로 확정될 차기 진단체계인 ICD-11(국제질병분류 11판)이나 DSM-V(미국정신의학회 진단체계 5판)에서는 아예 '스키조프레니아'라는 진단명 자체의 변경이 고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정될 병명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안이 나오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을 비롯한 전문가 집단에서는 일본과 비슷하게 '통합실조증'이나 '사고지각장애', '사각민감증' 등의 의견이 있다. 보호자 단체에서는 '도파민항진증'을 가장 선호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데 병명을 바꾸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만은 않다. 예를 들어 '도파민항진증'은 들을 때의 느낌은 좋으나 뇌 기능에 대한 향후 연구가 발전됨에 따라 도파민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발견되면 정신분열병 같은 오류를 다시 범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에서도 9년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병명 개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보더라도 병명 개정은 의학적 측면은 물론이고 정신과 질환에 대한 우리나라 특유의 선입관등을 고려해 아주 신중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중요하고 먼저 해결돼야 하는 것은 병명을 바꾸고 하는 부수적인 문제라기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환자들이 받는 낙인의 제거라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마치 신체적 질병과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이상하게 보고 기피하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 중독을 일으키고,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뇌를 상하게 한다는 후진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신질환은 누구의 잘못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다. 단지 정신기능과 관련된 뇌기능의 이상으로 발생한 질병일 뿐이다. 따라서 정신병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관을 없애고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누구나 우리 주위의 친구나 가족들과 같이 정상적인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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