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의 환수를 위해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 특별법' 시행 이후라도 친일파 재산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제3자가 이를 매입했다면 환수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친일파 재산이나 재산 매각 이익의 국가 귀속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져 특별법이 실효성을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13일 박모씨가 "친일재산 국가귀속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대로 원고승소 판결했다.
박씨는 특별법 시행일(2005년 12월29일) 이후인 2006년9월 친일파 후손에게서 경기 고양시 일대 밭 892㎡를 매입했다가 재산조사위가 이듬해 11월 국가귀속 결정을 내리자 소송을 냈다.
특별법은 '제3자가 선의(친일파 재산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시점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왔다. 현재 박씨와 같은 제3자가 재산조사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모두 10건이며, 이 중 하급심 선고가 내려진 6건의 경우 3대3으로 판결이 팽팽하게 갈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박씨 소송의 1심 재판에서 "특별법 시행 이후라도 선의의 제3자에게 매각된 재산은 환수할 수 없다"고 판결했고, 같은 법원 행정3부도 특별법 시행 이후 친일재산을 매입한 청송 심씨 효경공파 종중(宗中)의 국가귀속 취소청구 소송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반면 의정부지법은 유사 소송에서 "특별법 제정 취지를 감안할 때 법 시행 이후에는 친일파 후손에게 친일재산 처분권이 없기 때문에 매매행위 자체가 무효"라며 "제3자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취득한 재산이라도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 옳다"고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이 때문에 이날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집중됐고 결국 대법원은 제3자의 재산권 보장쪽에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특별법에는 제3자가 '특별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권리만 보장한다는 규정이 없다"며 "친일 행위와 관계없는 제3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것보다는 별도 입법을 통해 친일파나 그 후손으로부터 재산 매각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더 온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친일파 재산의 국가귀속이 어려워져 법제정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의 국가귀속을 막기위해 잇따라 재산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재산조사위에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은닉해둔 매각이익을 추적해 환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재산조사위 관계자는 "친일재산의 위장매매 여부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매각 이익에 대한 부당이득반환 소송 제기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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