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신종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은 이달초 남아프리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다국적 자원개발사인 W사의 C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일로 출장을 왔지만 아프리카까지 온 김에 만날 수 있으면 찾아가 보려고 한 것. 그러나 C회장은 당시 영국 런던에 있었다. 포기하고 짐을 싸던 다음날 아침 김 사장은 C회장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C회장은 밤 비행기를 타고 왔다며 회사가 소유한 주요 광구의 지분 투자 현황을 설명하며 매입 의사를 있는 지 물었다.
#2 유정준 SK에너지 사장은 최근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미국의 소규모 원유 생산 광구를 갖고 있는 업체들이 매각을 위해서 유 사장을 찾아오는 일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 1년전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시장 상황이지만 유 사장은 오히려 느긋하다. 지금보단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에 더욱 매력적인 가격으로 매물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해외 전문가들 전망이다.
최근 금융위기와 실물침체, 유가하락 등이 지속되며 유전이나 광산이 저렴한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살 엄두도 못냈던 유전과 광산이 20~30%, 경우에 따라선 50%나 싼 가격에 나오고 있는 것. 사실상 주요 원자재를 모두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오랜 숙제(자원확보)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유전ㆍ광산 매물 홍수
한국석유공사는 최근 중남미의 A유전과 중앙아시아의 B유전이 매물로 나옴에 따라 지분 인수를 위해 경제성을 검토하고 있다. 강영원 사장은 "두 유전의 매장량을 합치면 2억5,000만배럴이 넘는 데다 상반기와 비교하면 가격도 매력적이어서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최근 해외 생산광구들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M&A를 통해 지난해 5만배럴이던 석유공사의 일 생산량을 2012년엔 30만배럴까지 끌어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광진공도 매장량이 12만톤으로 추정되는 중앙아시아의 C우라늄광과 1억3,700만톤으로 추정되는 아시아의 D유연탄광에 대해 지분 투자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공기업들이 적극적인 해외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 당시의 학습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13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해외자원개발 최고경영자(CEO)포럼에서 이재훈 지식경제부 차관은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위험도가 높은 자원개발사업을 우선 정리하며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6개의 광구를 매각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후 고유가 시대가 되면서 기업들은 다시 광구 매입에 나서며 큰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자금 없을 때만 찾아오는 기회
문제는 돈이다. 이날 포럼에서 기 옥 금호석유화학 사장은 "금융위기가 엄청난 속도로 파급되며 기업들로서는 실물경제의 침체를 어떻게 견뎌내느냐가 최대의 과제"라고 토로했다.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도 "생산광구 매입 과정에서 절반은 자체자금으로 나머지는 생산량을 담보로 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조달하려 했었는데 갑자기 PF가 중단되며 어려움이 컸다"며 "탐사비용 조달도 쉽지 않아 내년에는 3개 해야 할 탐사를 1개로 줄이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건설적 대안도 적잖게 나왔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다양한 금융 기법을 동원해 자원개발 기업들을 돕는 한편 (산은이) 직접 지분 참여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쌍수 한전 사장도 "한전은 실수요자인만큼 언제든 민간기업들이 정보를 준다면 검토하겠다"며 "한전을 안고 들어가면 기업들로서도 컨소시엄 구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비나 도로 등을 지어주고 광구의 지분을 받는 방식처럼 외화를 빌릴 필요 없이 원화 자금이 출자로 이어지게 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 차관은 "지금의 기회를 잘 살려 자원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실물과 금융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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