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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두 골든브릿지증권 사장 '금융계의 구원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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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두 골든브릿지증권 사장 '금융계의 구원투수'

입력
2008.11.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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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에 빠지면 다 망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지만 곧 안정을 찾았죠. 지금 위기도 진정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들 한 치 앞을 쉽사리 말 못하는 이 때 골든브릿지증권 강성두 사장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주가가 2,000을 찍고 과매수 되면서 생긴 거품이 빠지고 있다"며 "정부가 믿음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 한 방향으로 꾸준히 미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투자자가 잊지 말아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거침 없었다. 그는 특히 투자할 기업의 도덕성과 돈의 쓰임새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물건은 기계가 만들지만 돌리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강 사장은 "아무리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라도 공익과 어긋나면 보고 또 봐야 한다"고 했다.

금융기업 경영책임자(CEO)가 이익 보다는 도덕성과 공익을 따진다니. 언뜻 앞뒤가 맞지 않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1990년 대 중반 까지 노동운동가 였다. 구로 공단에서 밀링 기계를 만졌고 87년 서울 남부 금속 노동조합을 만들어 위원장까지 맡았다.

94년 위원장을 끝으로 10년 노동운동가 생활을 끝낸 강 사장은 새로운 일을 해보기로 맘 먹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그를 받아 줄 곳은 많지 않았고 부엌 인테리어 업체 영업 직원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뒤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3년 만에 뉴욕의 직영점을 맡았고 적자를 흑자로 돌렸다. 그리고 2년 후 강 사장은 또 다시 파산 위기의 미국 현지 조명 회사 마케팅 책임자로 옮겨 전 세계를 누볐다.

2003년, 6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을 맘 먹은 그는 또 한 번 변신의 길을 택한다. 그것도 금융업으로. 강 사장은 "금융도 어차피 상대방이 있는 싸움이고 논리만 확실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며 "특히 노동 운동 경험이 좋은 재산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 골든브릿지기술투자, 자산운용, 캐피탈 사장 등으로 있으면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인수한 금융사는 모두 적자에서 흑자로 바뀌었다. 2005년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인수단장을 맡아 증권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 골든브릿지가 인수한 쌍용캐피탈의 자동차 할부 분야 매각을 총괄하면서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강 사장이 얻은 별명이 '구원 투수'.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또 한 번 구원투수가 활약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는 "모두 한결같이 대형화와 전문화가 살길이라고 하고 있지만 우리는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에 남다른 경험과 능력을 무기 삼아 특화 전략을 쓸 것"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회사가 100여 개 이상 난립했지만 실력으로 살아남아 금융 기업으로 뿌리내린 게 골든브릿지 하나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 동안'주몽' 등 드라마, 영화, 공연 등에서 실력을 입증 받은 문화 펀드 등 대체투자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해외 증권사 인수와 해외 법인 투자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했다. 이미 8월 베트남에서는 클릭앤폰 증권사를 인수했고 중앙아시아 등 이머징 마켓 개척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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