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의회에 구제금융안 승인을 요청하시오.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미 4위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보호신청으로 미 금융시장이 공포에 휩싸였던 9월 17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불쾌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평소 학자로서의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버냉키 의장이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리먼 브러더스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폴슨 장관이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은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질 경우 미 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가 엄청날 것이라며 압박했으나 폴슨 장관은 다른 금융기관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할 가능성을 내비치며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폴슨 장관의 예상은 빗나갔다. 리먼 브러더스의 실사 작업 과정에서 300억달러의 자산이 과대평가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아무도 인수에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미 금융위기 해결의 두 주역인 폴슨 재무장관과 버냉키 FRB 의장이 물밑에서 심각하게 갈등해 혼란과 차질이 적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가 10일 보도했다.
두 사람은 엘리트 미국인이라는 점을 빼놓고는 출신, 성장 배경, 스타일에서 판이했다.
버냉키 의장이 학자 출신으로 토론과 사색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인 반면 폴슨 장관은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는 등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중요시했다. 심지어 버냉키 의장이 색소폰을 즐기는 음악 애호가이지만 폴슨 장관은 대학 시절 풋볼 선수로 활약했다.
의회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버냉키 의장은 적극적으로 의회에 정보를 공개해 협조를 이끌어낼 것을 주장했으나 폴슨 장관은 정보를 공개하면 혼란만 가중시킬 것을 우려했다.
폴슨 장관이 9월 20일 의회에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안 승인을 요청하면서 의원들에게 공개한 서류는 단 석장에 불과했다. 의회는 구제금융안을 거부했고 우여곡절 끝에 10월 3일에야 가까스로 승인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추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미 주식시장은 1조 5,000억달러를 날렸다.
공적자금 투여 방식에서도 폴슨 장관은 FRB가 조건 없이 민간 금융기관의 부실 자산을 인수하기를 원했지만 버냉키 의장은 중앙은행인 FRB가 민간 금융기관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며 맞섰다. 버냉키 의장은 "재무부가 의회와 협조해 금융위기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폴슨 장관은 곧 물러날 예정이어서 두 사람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보도했다. 버냉키 의장의 임기는 2010년까지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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