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수문장 이운재(35ㆍ수원)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자격 정지 징계에서 풀려난 이운재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3차전(20일 오전 1시35분ㆍ리야드) 원정경기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1년4개월 만에 대표팀에 재승선했다.
지난해 11월 음주 파문 기자회견에서 회한의 눈물을 펑펑 쏟았던 만큼 대표팀 복귀를 맞는 마음가짐이 어느 때보다 새로울 수 밖에 없다.
10일 오전 파주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 입소한 이운재는 "새롭게 태어나겠다.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킨 후 지난 1년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느 정도 지켰지만 완벽하지 않다. 최선의 경기력으로 좋은 결과를 거두겠다"며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
이운재의 대표팀 인생은 '오뚝이'였다. '새 출발'이라는 표현이 그에게는 낯설지 않다. 숱한 고비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역정 때문이다.
이운재가 처음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다.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최인영이 전반에만 세 골을 내주자 김호 감독은 후반전에 경희대 재학생이던 신예 이운재를 투입했고 그는 45분간 무실점으로 골문을 지켰다.
고질적인 수문장 불안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후 오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96년 청천벽력 같은 폐결핵 진단을 받아 2년간 운동을 쉬었고, 대표팀 부동의 수문장 김병지(38ㆍ서울)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후 특유의 성실함 덕분에 김병지, 김용대(29ㆍ광주)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갔고 2002 한ㆍ일 월드컵 때 '신들린 선방'으로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후에는 '세대교체론'에 밀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태극 마크를 반납했지만 2007년 6월 대표팀에 복귀, 2007 아시안컵 본선에서 붙박이로 활약하며 두 차례 승부차기 승리를 이끄는 등 녹슬지 않은 솜씨를 뽐냈다.
그러나 대회 기간 중 동료들과 술을 마신 사실이 지난해 11월 뒤늦게 밝혀지며 대표팀 자격 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이운재의 대표팀 생활에 사실상 종지부가 찍힌 것으로 평가됐지만 그는 올 시즌 K리그 37경기에 나서 27골 만을 내주는 '철벽 방어'로 태극 마크를 다시 달았다.
정성룡(23ㆍ포항) 등과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운재가 붙박이를 다시 꿰찰 가능성이 높다. 허 감독은 10일 첫 훈련 후 인터뷰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였고 대표팀에서의 경험은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운재의 복귀를 기꺼워 했고 박지성(27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합류할 때까지 그에게 주장 완장을 채우기로 결정했다.
파주=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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