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원들은 모두 박물관 이름에 불만이 있는 듯하다. 강원도 유일의 국립 박물관이니 국립 강원박물관이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뿐이랴! 관람객들도 시립박물관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제법 많다. 모두들 춘천박물관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제주, 전주, 광주처럼 소재 지역의 도시명칭을 따서 국립박물관을 부르는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왔으니 이름 탓을 하기보다는 '춘천'이라는 이름 속에 녹아있는 강점을 살려 국립박물관의 활동영역을 활발히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춘천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는 데는 의외로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먼저 도시 규모가 작아서 관람객을 유치하거나 문화행사를 할 때 신명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친 산세로 동서가 나뉘어진 강원도라 전 도민의 관람객화에 장애가 많은 상태이다. 외부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해도 동서고속도로와 경춘선의 전철 복선화가 이루어지는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한편 연극이라든가 인형극, 마임 등과 같은 현대 도시문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박물관의 고답적인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춘천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도처가 마음의 쉼터이다. 대룡산이나 금병산에 올라서서 보면 봉의산과 소양호를 알처럼 품고 있는 춘천분지의 수려함은 저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비갠 후의 오후가 더욱 그러하다.
넓게 트인 시계 안에 아기자기한 춘천분지는 잘 꾸며진 미니어처 정원처럼 산이며, 호수며, 숲이며, 강이며, 플라타너스 가로수며, 정적인 사람들의 움직임까지도…무엇이든 풍경이 되곤 한다. 심신이 고달픈 현대인에게 쉼터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마주 보는 얼굴표정과 건네주는 손길에서 느낄 수 있는 순박한 시민들이 늘 가까이에 있다. 이들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만든 시설을 이용하고서도 굳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응당 받아야 할 서비스를 제공 받고도 작은 귤 한 개라도 건네고 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어 춘천은 늘 따뜻한 풍경이 된다. 이들은 쉼터의 지킴이들이다.
여기에 더하여 춘천은 그 사람 사람마다의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중도로 들어서면 선사인들이 밥 짓고 베를 짜던 그야말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다. 장절사를 찾으면 목이 없는 신숭겸의 장례 이야기가 있고, 의암호 아랫녘에는 유인석이 의병들을 모으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실레마을에는 김유정이 글을 써내려 가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최근에는 극중이지만 배용준과 최지우의 사랑 이야기가 도심의 곳곳에 얽혀 있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인 전상국 작가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 도처에 이야기가 숨어 있어서 춘천은 고단한 마음을 누이는 쉼터이면서 사람을 둘러싼 문화의 쉼터가 되고 있다.
춘천은 '춘천'이라서 그 자체로 충분히 풍성하다. 국립춘천박물관은 춘천에 둥지를 틀고, 춘천을 품고, 강원을 품는 박물관이다. 국립춘천박물관은 강원도민에게 따뜻한 쉼터, 춘천같은 쉼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 또한 이런 이야기가 있는 쉼터를 지키고 싶은 한 사람의 지킴이가 되겠다.
※유병하씨는 11월 7일 부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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