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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어리석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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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어리석은 게임

입력
2008.11.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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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현재 개성공단 입주 가동 기업체는 모두 88개, 북측 근로자는 3만5,500여명에 이른다. 평균 임금을 60달러로 잡으면 북측은 매월 200여만 달러를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다는 계산이다. 광물과 수산물 수출을 제외하면 변변하게 달러를 벌어들일 데가 없는 북측으로서는 매우 큰 외화 확보원이다. 북측 근로자 1인당 4명의 식구가 딸려 있다고 보면 14만여 명이 개성공단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통일부가 강도를 더해가는 북측의 대남 압박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개성공단 폐쇄 등 극단적 조치는 취하지 못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 그러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북측은 지난 달 대령급 남북군사실무회담과 중령급 남북군사실무자회담을 통해 강력한 경고사인을 냈다. 반북단체들의 삐라 공중 살포가 중단되지 않으면 개성관광은 물론 개성공단사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이어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이 나서 남북관계 전면 차단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기세로 미뤄 그냥 해보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6일에는 남북 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이자 국방위원회 정책실장인 김영철 중장이 군부조사단 6명을 이끌고 개성공단 입주업체와 기반시설에 대한 실사작업을 벌였다.

■ 김 중장은 조사과정에서 "철수하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조만간 공단 폐쇄조치를 취하겠다는 노골적 위협이다. 김 중장 일행의 방문 조사는 북측도 가능하면 공단 폐쇄를 피하고 싶다는 내심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셋 셀 때까지 요구를 수용하라고 말해놓고 하나, 둘, 둘의 반…, 식으로 시간을 늦추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측의 경직된 체제 특성상 마냥 시간을 늦추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 군부 세력은 군사시설을 양보한 것에 비해 개성공단의 과실이 너무 적다며 벌써부터 폐쇄를 주장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던 터이기도 하다.

■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시작된 남북의 기세 싸움과 심리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제 어느 쪽도 물러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바람에 남북경협의 상징 차원을 넘어 남측 한계 기업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상당수 북한주민의 생계터전이 된 개성공단이 희생제물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한번 폐쇄되면 복원은 기약이 없다. 전 재산을 털고 은행 빚까지 내 올인한 입주 기업인들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상생의 절호 기회를 남북의 집권자들은 한 쪽이 물러서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치킨게임'으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해 게임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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