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조원에 달하는 가계 금융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다. 실물 침체의 뇌관인 부동산 경기가 추락할 경우, 그동안 남발된 주택담보대출이 자산가치 급락의 후유증을 키우면 가계 몰락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체력이 바닥난 가계가 경제 위기의 터널을 큰 충격없이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전망은 분분하다.
가계의 금융부채는 1년 새 64조원이나 급증, 660조원(2분기 기준)까지 불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부문이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만 연간 50조원에 달해 가처분소득의 10%가 꼬박 이자를 갚는데 쓰이는 상황이다.
가계 살림은 벌어들이는 것보다 빚이 많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부채 상환 능력도 점점 악화하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해말 0.6%에서 9월말 0.7%로 높아졌다.
국내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는 1.53배로 미국(1.4배) 일본(1.2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 이상으로 부채는 급증했다.
1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보고서 '가계대출의 현황 및 평가'에 따르면, 2000년과 2006년을 비교할 때 가계의 평균 금융부채는 877만원에서 2,881만원으로 329%나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평균 총소득은 125%(2,727만원→3,420만원) 증가에 그쳤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집값 하락 등으로 주택시장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은행 가계대출의 60%는 주택담보 대출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뿌리가 미국의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에 있듯,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큰 국내 가계도 부동산 시장 침체가 깊고 길어질수록 파산으로 몰릴 우려도 높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산에서도 역시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계는 더욱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국내 가계가 부채 상환의 근본 원천인 소득의 증가세는 저조한 반면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83%)이 선진국들에 비해 높다"며 "금융부채 부담은 고정돼 있는 반면 자산가치는 가격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기 침체 시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실물 자산이 매각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채를 갚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을 매각하거나 개인파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자산 디플레로 인한 가계 발 불황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만 저소득계층을 중심으로 서브프라임모기지가 확산된 미국과 달리 국내 가계 부채는 고소득층 위주로 급증했다는 점에서는 부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득수준 하위20% 가구의 금융부채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258%(391만원→1007만원) 증가한 반면, 상위20% 가구에서는 390%(1482만원→5772만원) 늘었다.
김 교수는 "가계대출이 고소득층에 상대적으로 집중됐다는 점은 우리 가계 부문이 금리 변동, 경기 둔화, 실업률 증가에 상대적으로 덜 취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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