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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오바마 외교'와 칸트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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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오바마 외교'와 칸트의 고향

입력
2008.11.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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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항구도시 칼리닌그라드가 '오바마 대외정책'의 첫 시험대로 떠올랐다. 오바마가 당선된 5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미국의 동구권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맞서 이 곳에 신형 탄도미사일 SS-26을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핵 장착이 가능한 이 전술미사일은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을 설치할 폴란드 체코와 독일 일부까지 타격할 수 있다.

메드베데프의 선언은 세계가 오바마 당선을 반기는 분위기에 홀로 찬물을 끼얹었다. "잔치마당에서 칼을 빼 들었다"는 지적이다. 냉전 시대도 아니고, 더욱이 오바마가 일방주의 외교와의 결별을 다짐한 상황에서는 언뜻 무도한 행위로 비칠만 하다.

미 '미사일방어'에 러시아 맞대응

그러나 미사일방어 계획에 얽힌 복잡한 전략적 이해관계에 비춰, 그리 단순한 시각으로 볼 게 아니다. 러시아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줄곧 협력하고도, 갈수록 확대되는 나토 동맹에 포위된 형국에 처한 것에 배신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다자주의 외교를 표방한 오바마가 당선되자마자, 먼저 협상카드를 내밀고 '눈높이' 대화와 타협을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질서의 전환기에 칼리닌그라드가 부각된 것은 운명적이란 느낌이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서쪽의 국외 영토, 이른바 비지(飛地: exclave)다. 소련 해체 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두 나토(NATO) 동맹국 사이에 갇힌 외로운 섬이 됐으나 일찍부터 발틱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전략 요충이다.

칼리닌그라드는 또 18세기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이다. 그가 평생 잠시도 떠나지 않고 시계추처럼 정확히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는 그 도시다. 이곳에서 '순수이성비판' 등과 함께, 인류를 전쟁의 참화에서 구하고 세계평화를 이루는 길을 역설한 '영구평화론'을 썼다. 도시 창건 750주년을 맞은 2005년, 유서 깊은 칼리닌그라드 대학을 임마누엘 칸트 국립대학으로 개명하는 기념식에는 푸틴 대통령과 슈뢰더 독일 총리가 나란히 참석했다.

칼리닌그라드는 원래 독일 영토였다. 13세기 이래 독일인들은 쾨니히스버그로 불렀다. 지금도 흔히 그리 쓴다. 1차 대전 뒤 독일의 국외 영토로 러시아와 대치하는 최전방 요새 노릇을 했다. 2차 대전 말 치열한 공방전으로 37만 주민 가운데 5만 명이 겨우 살아 남아 독일로 쫓겨간 뒤, 소련 혁명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을 기리는 이름을 새로 붙였다.

이 기구한 역사의 도시를 새삼 부각시킨 미사일방어 계획 논란은 부시 행정부가 이란 북한 등 '불량국가'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막는다며 추진한데서 비롯됐다.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이란의 위협에 맞서 유럽 동맹국과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동구권에 방어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허구적 위협을 빌미로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시도로 본다. 냉전시대처럼 직접 러시아 핵 전력의 무력화를 노린 것이 아니라, 역사적ㆍ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불신하는 동구권과 서유럽의 갈등을 부추겨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접근을 방해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등의 '색깔 혁명'을 조종하고, 러시아와의 분쟁을 사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인식이다.

오바마 '평화' 의지 시험대 올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내심 미사일방어 계획을 마땅치 않게 여긴다. 독일이 "미사일 경쟁을 우려한다"고 넌지시 미국을 겨냥한 것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 전환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이번 주 EU와 러시아의 '안보협정'을 논의할 EU 정상회담과, 뒤이은 워싱턴 G-20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 주목된다.

오바마는 "미사일방어의 실효성이 입증되면 찬성한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링에 오르기도 전에 주먹을 날렸다"고 비유된 러시아의 선제 공세에도 기존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세계의 기대를 한껏 북돋운 오바마가 칸트의 고향, '영구평화론'의 산실이 냉전적 대결장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진정한 평화 시대를 열기 바란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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