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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프로의 生生 토크] 정상급 개그+실력, 박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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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프로의 生生 토크] 정상급 개그+실력, 박정상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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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쥐띠. 나와 동갑내기로 이미 최정상에 올라있는 박정상. 바둑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진지함과 열정을 갖고 있는 기사다. 하지만 바둑판을 벗어나면 전혀 사람이 달라진다. 온갖 수준 높은 개그와 수준 낮은 개그를 막무가내로 섞어가며 구사해 직업이 프로 기사인지 코미디언인지 헷갈리게 한다.

요즘은 좀 자제하는 듯하지만 정상이 특기(?) 중에 하나가 성대 모사다. 보통 사람들은 주로 연예인 성대 모사를 하지만 정상이는 동료 기사들이 모사 대상이다. 중국의 구리를 비롯해서 얼마 전 은퇴하신 문용직 사범님까지 다양하다.

정상이의 바둑 인생은 어릴 때부터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소문난 장난꾸러기였던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면 좀 침착해지지 않을까 하는 부모님의 기대로부터 시작됐다. 그를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들은 지금의 진지한 모습이 매우 낯설다고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일단 바둑판 앞을 떠나면 순식간에 어린 시절 정상이의 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장난을 잘 치고 웃기는 정상이지만 한 때 나와는 작은 오해가 있었다. 어제 저녁까지 분명 '하하 호호'하며 재미있게 놀았는데 다음날 연구실에서 만나 빤히 얼굴을 쳐다 보면서도 인사조차 안 해서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이 간혹 있었다.

당시에는 참 이상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바둑 공부할 때는 그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몰두하려다 보니 인사조차 잘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 지독한 노력 덕분에 모두 다 알다시피 몇 년 전 세계 타이틀인 후지쯔배를 거머쥐었다. '특별 보너스'로 군 면제도 받았고 원 없이 바둑의 꿈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이는 정말 '노력'의 대가였다. 오뚝이처럼 무수히 다시 일어나 반성하고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항상 좀 느린 것 같고 번쩍번쩍 요란하진 않지만 결국은 해내는 게 '박정상 스타일'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정상이가 천적 이세돌을 격파한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그동안 상대 전적이 1승 16패에 최근 내리 9연패. 너무나 참담한 성적이다. 본인은 물론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까울 정도로 매번 이상하게 바둑이 꼬여서 연전연패했다.

그런데 얼마전 드디어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매스컴에서도 이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이기고 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승부의 세계에서 한 판의 승리에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박정상에게는 의미가 있는 한 판이었다. 물론 아직 상대를 완전히 넘어선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이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지난 달엔 베이징에서 열린 '두뇌올림픽' 바둑 종목에 참가, 은메달을 획득했다. 프로의 세계에서 2등이란 꼴찌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시상식장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금메달을 딴 강동윤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어떤 책에서 "이미 졌다면 멋있는 패자라도 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제 정상이도 자존심 세고 승리만을 추구하는 기사가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하고 결과에 승복도 할 줄 아는 그런 멋진 승부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항상 꾸준한 노력과 진지한 마음가짐의 조화로 '1등급 프로'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정상'의 꿈을 품고 사는 연구생들이나 지금 시작 단계인 후배 기사들에게 가장 모범적인 '롤 모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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