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이후 서구 휴머니즘의 이율배반 공격
괴짜 예술가인 쿠도 테츠미(工藤哲巳ㆍ1935~1990)는 미국 점령하의 패전국 일본에서 가치관의 혼돈을 겪으며 성장한 전형적인 전후 세대다. 도쿄예대 유화과에서 보수적인 미술교육을 받았지만, 1958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사회 변화에 조응하는 작업을 일삼으며 일탈의 기미를 보였다고 한다.
쿠도는 1960년 개인전 '증식성 연쇄반응'으로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한 비판의식과,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추동할 에너지에 대한 갈구를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을 받으며 시대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평론가 도노 요시아키는 그의 작품을 '반예술(反藝術)'로 규정했고, 반예술은 곧 일본의 전후 아방가르드를 규정하는 주요 용어로 자리잡았다.
기세가 등등해진 쿠도는 1961년 '불능의 철학'을 천명했는데, 이는 일본 내의 전국적인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1960년 갱신된 일미안보조약에 대한 예술적 항의에 다름아니었다.
1962년 일본 국제청년미술가전에서 대상을 받은 쿠도는 후원금으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이때부터 그는 서구인의 이원론적 가치체계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주관과 객관, 나와 타자, 현실과 관념, 인간과 기계 등 서양 근대철학의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비판하는 일은 히지카타 타츠미에서 이우환에 이르는 전후 동아시아 예술가들이 공유한 전략으로, 그만의 독자적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원폭 이후의 휴머니즘이 지닌 이율배반적 성격을 자신이 꾸며낸 가상적 변종 생태계로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독창적이었다.
1960년대 후반 쿠도는 성기와 고치, 새장과 정원의 메타포를 활용하며 형광색으로 도색된 기이한 변종 생물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동시대의 현대미술과 연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플럭서스도, 누보 레알리즘도, 팝 아트도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고, 테시가하라 소후의 아방가르드 꽃꽂이와 분재를 차용한 점도 드러난다. 그러나 쿠도가 일군 괴세계는 정신병자의 환영처럼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고, 따라서 종종 현대미술이 아닌 것으로 간주됐다.
그에 대한 재평가의 발판은 1994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대형 기획전 '1945년 이후의 일본 미술: 하늘을 향한 비명'에서 마련됐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6월 안드레아로슨 갤러리가 그의 개인전을 연 데 이어 10월 워커아트센터가 회고전 '테츠미 쿠도: 메타모포시스의 정원'을 개막했다. 아마 죽어서 승리하는 예술가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데, 흥미롭게도 회고전의 담당 큐레이터는 한국 출신의 정도련이다.
미술ㆍ디자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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