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수단으로 출발한 사진은 여타 '예술' 장르에 비한다면 지극히 짧은 역사로, 한 세기 반 남짓한 기간만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최근에는 가장 각광받는 장르의 하나가 되었다.
올 가을, 사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성곡미술관의 '사진의 힘' 전은 현대 사진예술의 높은 수준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주한 프랑스문화원 개원 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로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재단이 소장한 작가 21명의 작품 100여점을 걸었다.
본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마주치는 커다란 칠판은 필립 그로농이 촬영한 파리의 명문 시앙스포대학 대강의실의 칠판이다. 마치 실제 칠판을 가져다 놓은 듯한 사진 속에서 수없이 글을 쓰고 지웠던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부엌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카롤 페케테의 '행주' 시리즈를 지나면 관람객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말 사진들이 다가온다.
베르트랑은 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린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 의 작가. 그의 이번 전시작들은 사막과 드넓은 초원, 플랑드르 풍경화 속 한 장면 같은 공원 등 자연 속에다 캔버스처럼 장막을 치고 촬영한 순수한 혈통의 말들의 모습이다. 오랫동안 자연과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춰온 작가는 자연과 동물 본연의 모습을 보존해야 함을 사진을 통해 말하고 있다. 하늘에서>
별관에 전시된 발레리 블랭의 흑백사진들은 인간의 욕망을 비춰낸다. '보디빌더' 시리즈는 터져나갈 듯 과도하게 부풀려진 근육과 몸들을 아무런 배경도 장식도 없이 정면으로 응시한다.
마치 조각품처럼 인공적이고 비정상적인 존재가 돼버린 인간의 모습이다. 마이클 잭슨을 꼭 닮은 인물을 찍은 '마이클 잭슨' 시리즈는 성형수술로 변형된 인간의 기괴한 모습을 담아낸다.
도시와 현대산업사회의 단면을 담아낸 작품들도 눈에 띈다. 도시 건축물의 기하학적인 형태나 색채감에 초점을 맞춘 사진으로 유명한 스테판 쿠튀리에는 철거를 앞둔 르노 자동차공장 등 도시의 모습을 화려한 색채감과 수직적 이미지로 묘사한 '도시 고고학' 시리즈를 선보인다.
보도사진의 형식을 빌려 작업하는 브뤼노 세라롱그는 수출입용 컨테이너들이 마치 레고 블록처럼 다양한 형태로 쌓여있는 사진을 통해 소비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드니 다르작은 파리 북부 빈민지역에 사는 이민자들의 모습과 거대한 콘크리트 아파트를 담았고, 피에르 고노르는 거지와 맹인과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가부키 단원 등 하층계급의 초상에서 시대의 문제를 읽어낸다.
기상천외한 연출사진을 찍는 필립 라메트의 작품에는 유머가 가득하다. '몰지각한 명상' 시리즈는 벽이나 담 위에 아찔하게 수직으로 앉아있는 남자를 찍었고, 목에 거대한 풍선을 달고 하늘과 바다를 향해 선 남자는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다.
카미유 앙로의 비디오 '킹콩'은 1933년과 1976년, 2005년 만들어진 세 가지 버전의 영화 '킹콩'을 겹쳐 묘한 기시감을 던져준다. 전시는 내년 1월 11일까지. 입장료 5,000~7,000원. (02) 737-765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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