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화랑 앞에서 10여명의 학생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벽 안으로 영국 작가 마틴 크리드의 풍선 설치작품이 들여다보였지만 화랑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화랑 옆에는 '창작환경, 미술시장 진흥에 역행하는 세제 개편을 즉각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국내외 작가 43명이 참여하는 미술행사 '플랫폼 서울'의 전시장 중 하나인 이곳으로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김자연 대진대 미술학부 교수는 "이번 전시로 수업까지 미리 하고 어렵게 시간을 맞춰 나왔는데 문이 닫혀 있으니 정말 황당하다. 좀 전에 들린 두아트서울도 휴관이었다"며 "학생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술계의 뜻은 알겠지만 화랑 입장만 생각한 처사 같다.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날 한국화랑협회 소속 140여개 화랑은 문을 닫기로 했다. 정부의 미술품 양도소득세 도입 방침에 항의하기 위해 7, 8일 이틀간 집단 휴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등 대형 화랑들은 일제히 '미술품 관련 세제 부가가치세 및 양도차익과세를 반대하여 휴관하게 됐다'는 게시문을 내걸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플랫폼 서울'도 전시장 12곳 중 5곳이 이틀간 문을 닫아 반쪽짜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관전시를 하고 있는 일부 화랑은 문을 열어 그나마 '집단 휴업'도 명색 뿐이었다.
정부는 9월 개인이 4,000만원 이상 미술품을 팔아 남기는 차액에 대해 2010년부터 20%의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내용을 담은 '미술품소득세법안'을 국회 재경위에 제출, 12월 9일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현재 작가나 화랑은 종합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내지만, 개인은 미술품 판매 때 세금을 내지 않는다. 미술품 양도세 도입은 1990년부터 꾸준히 추진돼왔지만 미술계의 반발로 다섯 차례나 시행이 연기됐다. 최근 2, 3년간 미술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협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등 7개 단체들은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반대에 나섰다. 과세를 하면 개인 거래가 위축되고, 미술시장의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현숙 화랑협회장은 "미술 작가 6만명 가운데 화랑을 통해 작품이 거래되는 작가는 3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번 법안이 통과된다면 고가 미술품뿐 아니라 미술품에 대한 전체 구매 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미술품을 통해 재산 축적을 하는 극히 일부 사람들을 잡자고 전체 미술시장을 죽일 셈이냐"고 말했다.
양도세가 시행되면 미술품 거래가 보다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다. 신정아 사건과 삼성 일가의 비자금 미술품 구입 의혹 등이 터지면서 미술품이 마치 불법 상속과 증여의 온상으로 비춰지고 있는 만큼, 일정 부분 타격을 입더라도 투명성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실상 양도세 부과 기준인 4,000만원 이상 고가 미술품의 거래는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화랑이 문을 닫고 집단행동을 하는 식의, 미술계의 대응방법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한 화랑 기획자는 "어차피 그림을 구입하는 큰 손님들은 연락없이 갑자기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이틀 문을 닫는다고 해서 화랑들이 손해볼 것은 없다"며 "화랑의 입장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일반 관람객들만 불편을 겪게 돼 오히려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휴업에 참여하지 않은 한 화랑 대표도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휴업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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