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들국화야! 항상 차가운 들과 그늘에서 살았잖아. 이제 햇볕 속에서 살지만 장미는 아냐!”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SK 김성근(66) 감독은 자신을 ‘들국화’라고 표현했다. 재일동포란 이유로 한국에서는 ‘쪽발이’, 일본에선 ‘조센진’으로 통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실력은 인정 받았지만 우승은 못했다는 뜻으로 ‘4강 감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야구의 신(神)’으로 바뀌었다. 꽃으로 말하자면 ‘장미’가 된 셈이다. 2일 인천 시내에서 만난 김성근 감독은 야구의 신(神)이란 호칭에 손사래를 치면서 ‘들국화’를 고집했다.
승리가 아닌 감동을 주자!
‘우승 비결’을 묻자 다짜고짜 “야구팬에게 승리의 기쁨이 아닌 투혼과 감동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 최정과 김재현의 홈런보다는 외야수 조동화와 박재상이 죽을 힘을 다해 수비하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잘 때리고, 잘 던져서 이기는 것보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투혼을 보여줘서 자랑스럽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승리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K 선수들은 지난 2년간 스스로 지옥훈련이라고 부를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지옥훈련을 원망하는 선수는 없었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니까 스스로 노력하더라. 감독과 코치가 선수를 도왔을 뿐이다”면서 “내 목표는 우승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팀은 실력이 뛰어나기보다는 투혼을 발휘하는 팀이다”고 말했다.
눈높이를 세계로 돌리자!
신중한 성격으로 소문난 김 감독은 시즌 초부터 공공연하게 아시아시리즈 우승이란 목표를 밝혔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전제로 한 목표라서 부담도 많았을 터. 그러나 김 감독은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면서 과감하게 아시아 정복을 다짐했다. 이유를 캐묻자 “일본을 뛰어넘어 미국에 도전할 생각을 가져야 한다. 메이저리그를 못 이긴다는 생각부터 버리자”고 강조했다. 한국야구가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게 궁극적인 목표인 셈이다.
“야구는 점수를 내야 이기는 경기다. 점수를 내기 위해선 한 루씩 진루해야 한다. 목표를 세분화하자면 한 루씩 더 가고, 한 루씩 못 가게 막아야 이길 수 있다. SK와 두산이 보여준 주루와 수비는 메이저리그에 갖다 놔도 뒤지지 않는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해서 메이저리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자.” 추위와 그늘에서 자란 ‘들국화’의 꿈은 햇볕을 받자 더욱 커졌다.
야구 없인 하루도 못 살아!
시월의 마지막 날 목표를 달성한 김 감독은 11월의 첫날 병원 신세를 졌다. 우승 축하잔치에서 선수들이 뿌린 맥주가 왼쪽 귀에 들어간 탓에 얼굴 왼쪽에 염증에 생겨서다. 밤새 고열에 시달린 ‘들국화’는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나서 요미우리와 세이부의 일본시리즈 1차전을 TV로 보면서 ‘뒤풀이’를 대신했다. 아시아 최고라는 목표를 세운 노장은 “귀와 얼굴이 아파서 걱정이었지만 TV를 볼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지난달 29일부터 매일 아침에는 굴비백반, 점심에는 소고기 볶음밥, 저녁식사로는 비빔밥을 먹었다. 자동차에서는 반드시 껌 두 개를 씹었고, 4회와 8회 공수교대 시간에 꼭 화장실을 갔다. 징크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옭아맸던 셈이다. 그는 “징크스라기보다는 이기고 싶은 애처로운 마음이다. 내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습관을 만들었을 뿐이다”고 고백했다.
‘한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는 ‘들국화’는 “승리보다는 감동을 주는 게 야구다”면서 “하루라도 야구를 떠나면 죽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인천=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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