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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애경 '브랜드 매니저' 표송연·류지영·박세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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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애경 '브랜드 매니저' 표송연·류지영·박세린씨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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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매니저가 전하는 각색동화 <잘생긴 초코 왕자님> 의 한 토막.

'샴푸의 요정' 나라는 40년 역사를 지녔지요. 놀랍게도 남자 요정은 없었답니다. 여자 요정(여성용 샴푸)은 50종이 넘는데요. 남자 인간들의 불만이 시나브로 하늘을 찔렀지요. "여자 요정은 남성의 머릿결을 몰라." "개운치 않고 가려운데다 머리칼이 축 늘어져." "엄마나 누이, 부인용 샴푸는 이제 그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죠. 남자 샴푸의 요정이 한둘 시장에 등장했어요. 그런데 죄다 대머리 왕자님(탈모 방지용 샴푸)이었답니다. '그루밍(grooming)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의 원성은 불 보듯 뻔한 일이죠. "우린 멋진 헤어스타일을 원해."

요정의 생사를 책임(브랜드 매니저)지는 처녀 3명이 나섰지요. 남성들의 신랄한 불만을 듣기위해 방방곡곡 돌아다니고, 머리카락만은 남성이 되려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칼도 싹둑 잘랐답니다.

시련의 연속이었지요. 남성의 두피와 모발에 맞는 성분으로 머리를 감아서 머릿결은 엉망이 됐어요. 매력적인 향을 수집하려고 향수뿌린 남성들을 졸졸 따라다니다 숱한 오해도 받았지요. "저한테 관심 있어요?"(남성) "아니오, 근데 무슨 향수 쓰세요."(브랜드 매니저) 심지어 탄생 얼마 전 "프로젝트 중단"이라는 엄명도 받았지요.

처녀 셋은 맥이 탁 풀렸어요. 술독에 파묻혔답니다. '성격(성분)과 몸(용기), 살 냄새(향), 이름(제품명)까지 선사했는데….' 그간 고생이 낡은 필름처럼 머리 속을 맴돌자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죠. 물밑에서 윗사람을 설득하는 한편 부족한 부분도 보완했어요.

드디어 2008년 8월 3일 새로운 남자 샴푸 요정이 탄생했어요. 엄마 셋은 '잘생긴 초코 왕자님'이라고 부르는, 왕자님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브랜드의 처녀 엄마들

다음은 동화의 각주(footnote)다. 브랜드 매니저(BM)는 제품의 엄마다. 남성용 샴푸 등(제품명 '케라시스 옴므')을 개발한 애경의 표송연(27) 류지영(25) 박세린(25ㆍ모두 미혼, 더구나 숙명여대 동문) BM이 그들이다. "철저히 준비해서 잘 낳아(개발) 가족과 지인에게 자랑하고(출시) 지극정성으로 밥 먹이고 교육시키고(광고 및 프로모션) 예쁜 옷도 철 따라 갈아 입히고(각종 이벤트)…"(표 BM), "성적표(매출 실적)에 울고 웃고"(류 BM), "가끔은 제 손으로 숨을 거둬들이는(단종) 일"이기 때문이다.

BM은 발견ㆍ발명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절반(남성)의 고독'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없었다면 남성용 샴푸 역시 세상의 빛을 못 봤을 터다. 1967년 11월 국내에 샴푸가 보급된 이래 유독 남성은 소외됐다. 비누로 대충 감거나 집안 여성의 샴푸를 동냥하기 일쑤였다.

'화장품도 남녀구분이 있는데 하다못해 샴푸랴.' 때론 뜬금없는 가설이 실체를 만드는 법이다. 집안 욕실을 뒤지고 관련자의 증언을 경청하니 답이 나왔다. "아버지는 싼 것, 어머니는 비싼 제품 등 집에 샴푸가 두세 종류는 있는 거에요. 아버지는 불만인데 어머니는 '괜히 비싼 것 사줘 봐야 가렵다고 타박이나 한다' 하시고"(표 BM), "주변 남성들은 '개운하게 감기는 샴푸가 최고'라며 은근히 값비싼 여성용 샴푸를 무시"(박 BM)했다.

남성 소비자 대상 설문결과도 비슷했다. '부드럽고 윤기, 아니죠! 개운하고 시원, 맞습니다!' 주부 모니터회의, 표본조사, 신문 뉴스 검색, 시장 조사를 해도 결과는 같았다.

사내 연구소에 제품 개발을 의뢰했다. 두피와 헤어스타일(여성은 장발, 남성은 단발)의 차이가 핵심이었다. 더구나 남성은 흡연과 음주, 스트레스와 땀이 많아 비듬과 가려움에 취약했다. 두피 혈액순환 촉진이 필수라는 답이 나왔다.

3인의 BM은 생체실험(?)을 자처했다. "머리칼을 짧게 깎고"(박 BM), "남성용 시제품으로 하도 머리를 감아서 모발이 엉망이 되고(표 BM),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샴푸매장 직원들에게 욕을 먹어도"(류 BM) 멈추지 않았다. 내친김에 사무실 안에 '작은 공장'까지 차려 시제품을 만들었다.

제품 개발에 착수한지 1년(올 1월)만에 상부로부터 "아직 시장진입이 이르다"며 퇴짜도 맞았다. 출시가 코앞이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데…, 100m를 뛰다가 신발끈이 풀어지는 기분"(류 BM)을 맛본 셋은 한동안 좌절했다. 함께 고생한 연구원과 디자인팀에게 죄스러웠다.

그러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기한 연기 결정은 오히려 공들인 제품을 냉정하게 보는 계기가 됐다. "내부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차피 승리할 수 없어. 처음부터 다시!" 타당한 논리개발 등을 앞세워 3월 워크숍에서 다시 허락을 받았다.

올 여름 시장엔 그들이 개발한 남성용 샴푸가 깔렸다. 기존에 명멸했던 남성전용 샴푸가 탈모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잘생긴 초코 왕자'는 강하고 깔끔한 세정력, 시원하고 개운한 사용느낌이 특징이라고 한다. 표 BM은 "출시 초기 매장 구석에 쳐 박혀있던 제품이 진열장 주요석에 자리를 잡는 등 아직 분위기는 좋다"고 했다. 틈새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BM의 세계는 네버엔딩(Never Ending) 스토리

BM의 역할은 제품 출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치열한 전장에서 생존하고 까탈진 고객에게 사랑 받기 위해선 더한 정성(광고 및 프로모션, 실적관리)을 쏟아야 하기 때문"(표 BM)이다. 적자생존하지 못한 브랜드를 기다리는 운명은 죽음(단종)뿐이니까.

그래서 BM은 머리털 빠지는 직업이다. "애써 개발한 브랜드에 해를 주지 않기 위해 늘 더 재미있고 확 띄는 아이디어를 쏟아내야 하고"(박 BM), "한정된 재원(원가 및 판촉비용 등)으로 치열하게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하고"(류 BM),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환경을 헤쳐나가고, 정답이 없는 미래를 미리 판단"(표 BM)해야 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지만 매력도 있다 "회사의 든든한 지원 아래 개인 사업하듯 틈새를 찾아 도전하고 조율하는 과정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고"(표 BM), "직급과 상관없이 A부터 Z까지 다양한 경험과 온갖 사람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류 BM)이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제품은 BM 역할을 하는 이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지론. 비유는 이렇다. "연예인이 예쁜 외모로 사랑 받는다면 BM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고객의 카트(수레) 안에서 함빡 웃고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할까요."(박 BM) 그런 고객은 와락 껴안아주고 싶단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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