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 브랜드를 보유한 제조업체조차 유통망을 쥔 대형할인점의 PL(Private Labelㆍ자체 상표) 요구에 속수무책인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바나나맛우유 시장의 85%를 점하는 빙그레가 9월 중순부터 신세계 이마트에 PL제품 '바나나맛우유'와 '딸기맛우유' 납품을 시작했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 판매로만 자사 매출의 25%, 연간 1,100억원을 벌어들이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업체. 이런 빙그레가 이마트에 PL제품을 납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빙그레 측은 "이마트 바나나맛우유는 하루 100박스(20개 들이), 월 3,000만원 정도의 작은 물량인데다, 용기와 맛 성분이 달라 고유 브랜드와 마트용 상품이 상호 충돌할 우려는 없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러나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 PL 공급은 갈수록 거대화하는 유통파워 앞에서는 업계 선두주자조차 자존심을 접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실 여름까지만 해도 빙그레는 "업계 선두로서 할인점업계의 PL요구에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압력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우리가) 바나나맛우유만 만드는 것도 아닌데 PL 못 만든다고 버텼다가 다른 제품들이 할인점 매대서 빠지거나 구석으로 옮겨지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처음엔 용기도 단지형으로 똑같이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그것만은 불가능하다고 버틴 끝에 용기는 달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토로했다.
빙그레 외에도 서울우유가 지난해부터 자체 브랜드인 '뼈에쏙쏙 고칼슘 우유'와 명칭이 흡사한 '고칼슘 우유'를 이마트에 납품하고 있으며, 국내 간장시장 점유율 50%에 달하는 업계 1위 샘표식품도 자체 상표인 '샘표진간장' 외에 홈플러스에 '알뜰진간장'을 납품하는 등 업계 1위 브랜드들의 유통업 종속화가 심화하고 있다.
샘표가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제품의 경우 용기와 성분까지 똑같다. 샘표 측은 "유통업체의 요구로 PB상품을 납품하기는 하지만, 막상 매출엔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며 "조만간 PB상품을 철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업계 1위 제품들의 할인점 PB화와 관련, "대형할인점에 맞서 버틸 수 있는 제조업체는 많지 않다"며 "PL상품이라도 잘만 팔리면 매출 증진에 도움이 되지만, 대형할인점의 납품단가가 워낙 낮아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밝혔다. PL의 경우 통상 제조업체의 마진이 내셔널브랜드 상품의 2분의 1 수준이라 업계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마트 관계자는 "예전에는 제조업체들이 일방적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을 붙여 판매해 사실상 제조업체의 매출이익 거품 현상이 있었다"며 "PL상품은 소비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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