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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들소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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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들소를 추억하다

입력
2008.11.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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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범

골목길 귀퉁이에

자동차 한 대 버려져 있다

앙상하게 바람을 맞고 있는 자동차는

아직도 보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는지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하고

골목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초식동물처럼

뼈대만 앙상한 자동차

자동차는 무리지어 이동하는

초원의 들소떼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한 마리

늙은 들소를 추억하고 있다

하염없이 초원의 저편을 바라보는 들소는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들소의 눈은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무리의 흔적을 ?는다

골목길 귀퉁이에 버려진 낡은 자동차는

초원의 늙은 들소처럼 골목길 너머,

무수히 질주하는 속도의 흔적을 ?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골목길

눈 감지 못한 죽음이 애처롭게

그 너머를 바라보는,

고요한 속도의 뒤편

고속도로 위로 말들이 질주한다. 코뿔소와 산양, 심지어는 바다에서 올라온 상어까지 무리를 짓고 있다. 개중에 들소가 없으란 법 없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도 자신을 철저하게 들소라고 믿고 앞을 향해 달리던 자동차, 그가 늙고 병들어서 골목길 그늘진 곳에 버려졌다.

더는 쓸모가 없어져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는 그는 아직도 초원을 그리워하고 있다. 무리로부터 밀려났지만 몸을 털고 일어서면 지금이라도 당장 왕년의 속도를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몸은 꿈쩍도 않는다. 초원의 꿈을 잊지 못한 채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속도의 그늘이 평화로운 골목길을 애처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자동차 작명에 동물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걸까. 들소가 될 수 없는 들소떼의 꿈이 오늘도 시동을 걸고 부릉부릉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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