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분에 들어간다. 건물 건너 편 수퍼마켓에 앉아 있는 3명은 문빵(게임장 경비 담당 종업원을 지칭하는 은어)으로 보이니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5일 오후 7시 5분 어둠이 깔린 신길3동의 7층 신축건물. 서울경찰청 스텔스부대 5기동대 1제대 3팀 소속 요원들이 작전 시간에 맞춰 일제히 건물의 정해진 지점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10여분 뒤 지하 1층 정문 쪽에서 한 요원이 "CCTV입니다. 여기가 확실합니다"라며 간판을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OO'라는 검은 글자 사이로 지름 0.5㎝ 정도 되는 원형 렌즈가 보인다. 소형 CCTV 카메라였다.
"해체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4㎏ 해머를 든 요원 두 명이 벽으로 위장된 철문을 내려친다. 탕! 탕! 탕! 철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30여분쯤 지났을 때 건물 반대편을 지키고 있던 2팀에서 무전연락이 왔다. "주차장 옆 기계실에서 비밀통로가 발견됐습니다. 그쪽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잠시 뒤 H빔과 5중 빗장으로 된 두께 5㎝ 강철문이 열렸다. 중세의 성문 같았다. 문을 여니 가로 6m, 세로 2m의 대형 스크린이 나타났다. 불법 사설 경마장이었다.
비상탈출로까지 완벽하게 차단당한 업주와 종업원, 손님 11명은 꼼짝없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요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정밀수색조와 수사조로 나뉘어 현장을 샅샅이 뒤진다.
1시간 뒤 기초조사를 마치고 종업원과 손님, 현금 230여 만원, 장부 등 압수품 등을 관할서인 동작경찰서에 인계하고 저녁도 거른 채 다음 작전지역으로 이동한다. 건물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은 "지금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데 도박이라니…"라며 혀를 찬다.
다음 단속 장소에 대한 자료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전달된다. 단속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출입구 및 비상 통로 등 내부 도면이 상세히 표시돼 있다.
"지난 주 월요일이 생일이었는데 퇴근하니까 새벽 1시였어요. 애들이 그때까지 안자고 기다리다가 케이크에 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힘들어도 이 맛에 사는 거죠." 작전 회의가 끝나자 3팀의 맏형인 노승원(43) 팀장이 중학생 두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한다.
신경자(29ㆍ여) 순경도 핸드폰에서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다른 여경들과 잠시 수다를 떤다. 여경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집에 못 들어간다.
"새벽 1시, 2시 넘어 끝나면, 그냥 기동대 숙직실에서 자요. 왔다갔다 교통비도 아끼고 잠도 더 잘 수 있으니까요." 집이 군포인 장민아(25ㆍ여) 순경의 말에 동료들은 "시집가서도 잘 살 거야"라고 맞장구를 치며 일제히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웃음도 잠시. 다음 단속 장소인 여의도 한 지하상가에 도착해 이날 세 번째 작전이 펼쳐졌다. 벽을 위장한 철문을 뜯어내자 이번에 '바다 이야기'와 경마 오락기 72대가 놓인 대형도박장이 나타났다. 저녁 8시 40분쯤 시작된 작전은 밤 11시 40분에야 끝났다. 하지만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난 편이다.
이때서야 요원들은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을 찾아 나섰다. 식대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해 서로 호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야 하는 형편이지만, 늘 식사자리에선 이야기 꽃이 만발한다.
스텔스부대가 창설된 것은 올 9월 17일. 촛불시위가 잦아 들자 서울경찰청은 민생치안에 주력하겠다며 기동대 2개 부대를 불법영업소 전문 단속 부대로 재편했다. 창설 초기만해도 단속의 효율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수사경험이 적은 기동대 요원으로 부대가 꾸려진 탓이다.
하지만 두 달도 안돼 불법오락실과 환전소 등을 113군데나 적발했다. "현장에 첩보 수집하러 나가면 꼭 건물의 배기구에 코를 갖다 댑니다. 불법업소에서 흘러 나오는 공기의 냄새만 맡아도 이제 감이 와요." 3팀 소속 조명훈(36) 경장의 말이다.
하지만 스텔스의 활동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단속이 불법 경마나 오락실에 집중되고, 공언했던 '성매매 업소'단속은 단 3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법영업소 적발도 과거의 예로 볼 때 캠페인성 반짝 단속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경마나 오락실은 직접적으로 서민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는 민생안정 침해요소"라며 "성매매업소는 해당 경찰서를 중심으로 단속하고, 스텔스는 시급한 불법 영업소 적발을 중심으로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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