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이 지금 부르시는 노랫말을 들으면 과거의 아픔을 노래로 치유해왔다는 걸 알 수 있고,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얼마나 참혹한 인권 범죄였는지 느낄 수 있어요."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원당리에 위치한 나눔의 집 수련관에서는 푸른 눈을 가진 미국인 조수아 필저(28) 박사의'소나무의 마음-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의, 자아 만들기를 위한 노래'라는 학위 논문 발표가 있었다.
조수아 박사는 2002년 여름부터 1년 반 동안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며 故박두리, 故문필기, 배춘희 할머니의 노래 400여 곡을 채록ㆍ연구해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연구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조수아 박사가 처음이다. 조수아 박사는 버클리, 예일, 콜롬비아 등 미 대학과 일본의 가나가와대에서도 발표회를 가졌다.
조수아 박사는 논문 제목에 대해 "문필기 할머니가 어릴 때 먹을 것이 없어 아버지와 소나무 속을 갈아서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할머니들이 팍팍한 삶 속에서'노래'라는 치료약을 찾은 느낌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조수아 박사에 따르면 할머니들의 노래에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드러난다.
故박두리 할머니가 개사한 장구타령에는'홀애비 실어다 나눔의 집으로'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상상적 상황을 노래로 푼 것이다.
조수아 박사는 故문필기 할머니가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를 때 불효자와 관련된 부분을 모두 빠뜨린 채 흥얼거린 데 대해선 "노래를 통해 어머니와의 관계를 정화하는 모습"이라며"문 할머니가 잘 때도 라디오나 TV를 켜놓는 것은 격리된 할머니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국적의 유태인인 그가 한국음악, 더 나아가 위안부 할머니를 연구한 이유는 뭘까.
조수아 박사는 1993년 학부에서 음악인류학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한국전통무속음악인 시나위를 듣고 반했다. 이후 1995년 하와이대 이병원 교수 밑에서'서도소리'에 대한 석사논문을 썼고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어도 배웠다.
국립국악원에서 서도소리와 가야금 등을 익혔고 박사논문 소재를 찾다 우연히 위안부 할머니 증언집을 읽고 "바로 이것"이라고 결정했다.
연구가 순조롭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할머니들이"나가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청소, 풀 뽑기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은 덕에"미국 얼라, 여서 자라"는 허락을 받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할머니들과 친하면 다른 할머니들에게 미움을 샀다. 그래서'4시30분에 운동하는 할머니' '밤에 몰래 술 먹는 것 좋아하는 할머니' 등 성향에 맞춰 공평하게 만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짰다.
조수아 박사는"처음엔 할머니들이 위안부 당시 부른 일본 군가와 전쟁노래를 연구할 생각이었지만 와서 보니 현재 부르는 노래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조수아 박사는 내년 3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 음대 교수로 취임, 한국음악 및 생존자음악을 가르치게 된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