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문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
"소설은, 아마도 나 자신에서 비롯된 물음들을 해결하는 한 방식이겠지요. 존재의 '곤혹스러움'과 맞서기도 하다가 결국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 대해, 소설은 그것들을 가장 지독한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정영문(43)씨의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 는 존재의 본질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의 의식세계를 다룬다. 그곳은 시간도, 공간도 무화된 세계다. 작품 전체를 무의식의 흐름으로 채우려는 작가의 이전의 시도와 달리 이번에는 작은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배치돼 있다. 목신의>
어느 호숫가에 앉아있는 세 남녀의 무료한 일상을 포착한 표제작, 강도 침입사건에 대한 한 여성의 전언을 형상화한'브라운 부인'등의 단편이 그렇다. "서사에 대한 생래적 반감이 있다"는 정씨에게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는 "말랑말랑해졌다는 말도 들리더라구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파편적이고, 서사로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야기라는 장치를 빌어 인물의 의식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태를 엿보고자 함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소설의 주류인 사실주의적 전통과 정반대 지점에 놓여있다.
"사실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좀 순진합니다." 정씨는 "지금 이 세계는 사실주의의 틀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파편화돼 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도의 소설형식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주인공들이 사건도 행위도 없이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요점이 없었고, 그래서 어떤 요점에도 이르게 되지 않았다"('브라운 부인' 중)는 구절에서는 "때로 누구도 읽지 않을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는 정씨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렇게 등단 이후 10년 넘게, 한국어의 극한까지 가 보려는 듯한 언어실험을 계속해오고 있는 정씨. 독자들과의 소통에 대한 답답함은 없을까? "포장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서로 다른 개인인 한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오히려 내면의 심연으로 들어간다면 심층적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품 속 이 구절
"한번은 어머니가 다람쥐와 모래와 편지에 대한 어떤 얘기를 했고, 아버지는 이발소와 우체국과 푸줏간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은 중간중간 뒤섞였고, 그래서 다람쥐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은 뒤에 우체국에서 모래가 들어간 소의 내장을 사 푸줏간에 갔다주먼 ?겠다, 와 같은 말로 들리기도 했다."(153쪽)
"하지만 어느 날 나는 테니스 공을 치는 것에 싫증이 났고, 그래서 그것들을 바다에 모두 던져버렸다. 나는 초록색 테니스 공들이 파도에 떠밀려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그 작은 공들은 아직도 바다를 떠다니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나는 그것들이 여전히 대양을 떠다니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초록색 테니스 공들을 바다에 던지고 싶었다."(262쪽)
■ 프로필
1965년 경남 함양 출생.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1996년 '작가세계' 가을호에 장편 <겨우 존재하는 인간> 발표하며 등단. 장편 <핏기없는 독백> <달에 홀린 광대> ,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등 발표. 1999년 <검은 이야기 사슬> 로 동서문학상 수상. 검은> 꿈> 더없이> 나를> 검은> 달에> 핏기없는> 겨우>
'글 속에서 헤엄친다'는 이름(영문ㆍ泳文) 때문에 글 쓰는 것을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커피를 하루 4, 5잔 마시지만 테이크아웃 커피는 사 먹지 않음. 글이 풀리지 않으면 가볍게 몸부림을 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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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가 인터뷰 <4>
■ 정지아 소설집 '봄빛'
"거대 담론에 치우쳤던 젊은 날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까요. 삶은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 인간을 떠난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각성에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됐습니다."
빨치산 출신 부모의 체험을 풀어낸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 (1990)의 작가 정지아(43)씨의 두번째 소설집 <봄빛> 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봄빛> 빨치산의>
그들은 기세등등했던 젊은 날의 결기는 사라지고 치매로 늙어가는 노인, 예순살 된 아들과 백살 된 노모, 빨치산 출신의 치매에 걸린 남편을 둔 아낙 등 늙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 개개인의 삶에는 분단이라는 한국현대사의 모순적 상황의 굴레가 걸려 있다.
"작가로서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제가 느끼고, 체화돼 느껴지는 것만큼밖에 쓸 수 없어요" 라는 정씨는 "요즘 '역사 담론'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지금 현재 개인의 삶이 쌓여 역사가 될 것 "이라고 말한다.
소설집 <행복> (2004)에서부터 시작된 정씨의 변모는 <봄빛> 에 이르러 한결 원숙해졌다는 평이다.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들은, 때로 선동적이고 도식적이기까지 했던 80년대식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 그 모든 것을 감싸안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깊고 따뜻한 애정으로 충만하다. 봄빛> 행복>
그런 의미에서 정씨의 문학적 도정은 갈수록 왜소해져가고 있는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현재적 가치를 보여주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씨는 감각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최근 소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얼짱' '몸짱' 열풍 등 우리 사회는 실체없는 이미지를 너무 중시하는 것 같아요. 문학마저 그것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문학의 소임을 포기하는 일이지요"라고 그는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씨가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거 이야기만 쓸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저는 실타래가 꼬인 채로 전진할 수는 없고, 전진을 하더라도 다시 그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씨는 "마치 우리가 과거와 전혀 다른 현실에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런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작가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 작품 속 이 구절
"그들이 그의 생명을 키워냈듯 이제는 그가 그들을 품어 그들이 세월에 빚진 생명을 온전히 놓고 죽음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냉정한 생명의 법칙이었다."(48쪽)
"세상에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 꿈꿔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목숨 있는 존재는 자궁이 대물림한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쓸쓸하고 외롭고 아플 수밖에 없는 것임을, 그는 신김치전 한장의 유혹에 침을 질질 흘리며 못줄을 잡아야 했던 다섯 살 이래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제게 주어진 운명만큼이나 선연하게 보았던 것이다."(99쪽)
"오도 않는 아부지를, 오도 않을 것을 훤히 암시롱도, 이랄 수도 ?졀?저랄 수도 ?종底? 지둘릴 수밖에 ?졍? 고것이 마음이지라."(228쪽)
■ 프로필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0년 장편 <빨치산의 딸> 발표,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고욤나무' 당선. 단편 '풍경'으로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 수상. 소설집 <행복> , <봄빛> 등. 봄빛> 행복> 빨치산의>
글이 안 풀리면 술을 마심. '풍경'은 위스키 반 병을 비우고 쓴 작품. '생활의 달인'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작품 아이디어를 종종 얻음. 요즘은 하루 100m 이상 걷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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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문학상과 나구효서 <제27회·1994년 수상>제27회·1994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1994년. 큰 아이가 여섯 살, 작은 아이가 한 살 때였다. 서른세 살 되던 해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만 썼다. 대책 없고 무리한 결정이었다. 90년대가 막 시작되던 무렵, 모든 소설가에게 시련의 시기였다. 깡통따개가>
무엇을 쓸 것인가. 밤낮 없이 고민했다. 달라진 시대도 시대였지만 나 개인의 생물학적인 나이, 문단경력, 능력과 한계, 그 모든 게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만 하릴없이 써내고 있었다. 땀 뻘뻘 흘리며 뛰었으나 정작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악몽이었다.
그러다 병이 나서 더 이상은 소설을 못 쓸 것 같았다. 체중이 급격히 줄고, 현기증에 시달렸다. 집을 오래 떠나본 적이 없었던 나는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시골에 틀어박혔다. 내 몰골을 보고 놀란 윤대녕이 부리나케 주선해 준 대청호 주변의 작은 암자였다.
그곳에서 글 한 줄도 읽거나 쓰지 않았고, 신문도 티비도 보지 않았다. 먹고, 자고, 감나무 밑에서 하염없이 대청호반을 바라보았다. 물 담긴 빈 깡통에 가을꽃을 꽂아 숙소 안에 놓아두고 이따금 울기도 했다.
그러다 한살배기 아이가 낚시를 삼켜 사경을 헤맨다는 아내의 겁먹은 전화를 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것이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의 내용이면서 내 경험 그대로였다. 깡통따개가>
시상식 때 찍은 사진을 보면 피골이 상접한, 도무지 나인 것 같지 않은 내가 허허롭게 웃고 있다. 아내와 어린 두 아이들의 눈도 어딘가 막연하고 불안한 빛을 띠고 있다.
수상 이후로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한국일보문학상은 나에게 구제금융 같은 거였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더 크게 얻은 것이 위안과 자신감이었다.
걱정은 그만하고 이제 열심히만 쓰라니까! 불안해하는 신인 작가에게 이 보다 더 큰 격려가 있을까. 많은 후배 작가들의 외로운 결단과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게 해줄 조용하고 든든한 응원. 한국일보문학상은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구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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