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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칼럼] 고려대와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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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칼럼] 고려대와 KAIST

입력
2008.11.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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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국제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완벽에 가까운 연기로 우승, 온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한 '피겨요정' 김연아 선수가 고려대의 2009학년도 2학기 수시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고려대는 캐나다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김 선수가 화상 면접으로 응시할 수 있게 학칙까지 바꿨다고 합니다.

김 선수는 원하는 학교에 다니게 돼 기쁘다고 하는데 "왜 하필 고려대로?"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합격자 발표가 불러일으킨 논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려대가 김 선수와 같은 체육특기자와 과학영재를 뽑는 수시 2-1과 함께 발표한 수시 2-2 일반전형 1단계 합격자 선정 과정에서, 내신 성적이 좋은 일반고 학생들을 탈락시키고, 내신 나쁜 특목고 학생들을 다수 합격시켰다는 겁니다.

피겨요정 김연아의 고려대행

학생부에 의거해서 선발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긴 데다 논란이 불거진 후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 받는 고려대를 보니 왜 한국과학기술원(KAIST)처럼 하지 못할까 안타깝습니다. KAIST는 창의력 있는 인재 선발을 위해 2008학년도 입시부터 성적 대신 심층 면접 위주의 전형으로 바꿨는데, 그 덕에 서류전형으로는 합격할 수 없었을 학생들도 들어왔다고 합니다.

수험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개인별 발표 주제를 1주일 전에 게시했더니 학원 등에서 미리 준비해오는 일이 있어, 앞으로는 신입생 선발 기준만 공개하고 세부적인 것은 공개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2006년 7월 취임해 KAIST의 개혁을 이끌어온 서남표 총장은 '모든 것을 적당히 잘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가 재미있어서 열정을 쏟아 붓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서 총장은 이미 학부 1,2 학년 대상 전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게 했고, 정년보장 심사에서 40%의 교수를 탈락시켰으며, 다른 대학에서 다른 전공을 했던 학생을 선발하는 '2(타 대학 2년)+3(KAIST 3년) 융합학사 과정'을 신설했습니다. 융합과정은 과학고 출신이 70%가 넘는 KAIST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거라고 합니다.

내년부터는 석ㆍ박사 과정 학생들의 졸업 연한을 2년씩 대폭 줄여, 부득이한 경우에만 심의를 거쳐 1회, 1년 연장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수업료를 정부 예산에서 장학금으로 지원 받고 있는 KAIST 학생들이 학교에 오래 머물지 말고 사회에 나가 공헌해야 한다는 게 서 총장의 생각입니다.

작년에 영국의 더 타임스 선정 세계 대학 종합평가에서 132위를 했던 KAIST가 올해 95위가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학 및 IT 분야에선 34위, 자연과학 분야에선 46위를 기록했으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299위를 하여 종합평가에서 95위에 그쳤다고 하는데, 국내 대학 중 100위 안에 든 건 50위인 서울대와 KAIST뿐입니다. 고려대는 작년에 243위, 올해는 236위입니다.

1936년 한국에서 태어난 서 총장은 1954년에 도미, 이듬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 1970년 모교의 교수가 되었고, 1980년대에는 대통령의 추천과 상원 인준으로 임명되는 미국 과학재단(NSF)의 공학담당 부총재로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서남표 총장의 창의적 리더십

대부분의 우리 대학들이 KAIST처럼 하지 못하는 건 총장들과 교수들이 서 총장과 다르게 '창의적 리더십'보다 정치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른 학교는 몰라도 대통령을 배출하고 세계적 선수를 들이게 된 고려대만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학칙을 바꿔가며 뛰어난 신입생을 확보하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제 2, 제 3의 김연아를 키워내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면 2년 안에 달라져야 합니다. 김 선수가 고려대를 2년 다닌 후 KAIST의 융합과정으로 옮겨가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김흥숙 시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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