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금융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파격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부실은행들에 지분을 투입해 국유화하는 조치는 기본이고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을 지급 보증하는가 하면 예금보장 한도를 무한대로 늘리는 등 평상시 같으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파격적 조치들에 힘입어 금융위기는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발표만 하고 늑장집행 안되게
하지만 문제는 실물경제다.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데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은 만큼 금융위기가 진정된 후에 회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실물경제의 후퇴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경제에 전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틀이 멀다 하고 대응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도해 보이지는 않는다.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 조치는 물론 경기 진작을 위한 금리인하 폭이나 추가 재정투입 규모 등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정도로는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없고 더 적극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도 금리 인하 등 추가적 경기 진작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추가 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만들어 놓은 대책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시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 경기대책들을 보면 재정을 조기 집행한다고 발표는 해놓고 실제로 집행되는 데 행정력이 따라오지 못해 실효성이 없게 되거나 재정 지출을 늘리기로 했지만 어느 부문에 어떻게 집행하느냐 하는 데서 혼선을 빚어 효율성 문제를 낳기도 했다.
특히 지금과 같이 경제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 대책들이 시행되는 경우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높다. 경기 진작을 위해 투입되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한다면 효과는 충분히 거두지 못하고 향후에 돌아올 긴축의 부작용만 고스란히 떠안을 수도 있다. 경기 진작과 생산적 투입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실무적 집행 능력이 중요할 것이다.
둘째, 단기적 금융위기 탈출 대책과 장기적 안목에서 다루어야 할 정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급박한 위기상황에 시간을 다투어 대응책을 마련하다 보면 장기적 안목에서 건드려서는 안 될 사안까지 건드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게 된다. 차후 경제에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대응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단기적 경기부양 대책뿐만 아니라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서도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 중 하나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감독 실패였던 만큼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당장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과 관련된 보완논의가 필요하다. 방향 자체는 백번 옳지만 부작용은 철저히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위기는 취약점 고치는 기회
또한 세계 금융위기 진행 과정에서 경제의 펀더멘털(경제기초체력)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유동성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 금융질서 재편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하고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금융과 중소기업 부문 등 취약부문에서 발생할 부실을 처리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이 있었던 만큼 아무 일 없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대응들을 통해 한국경제의 취약부분을 개선함으로써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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