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로 흑인 후보의 백악관 행을 터준 이번 대선의 개표 결과에는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가 농축돼 있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적 혁명은 백인과 유색인종간 표심의 장벽이 허물어진 결과는 아니었다. 엄밀하게 인종간 투표 성향의 차이는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는 미 선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변혁의 핵심은 유권자 구성에 있었다. 등록 유권자 중에서 백인 비율이 줄어든 대신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는 늘어난 변화가 오바마 승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와스프(WASPㆍ백인앵글로색슨신교도)로 대표되는 백인 유권자들이 같은 백인인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하기 위해 선뜻 나서지 않은 사이 정치에서 빗겨서 있었던 유색 인종과 젊은층, 민주당에 호의적인 여성들이 대거 유권자 등록을 한 것이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 마이너리티의 몰표가 원동력
오바마의 가장 값진 승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 백인이 지배했던 메이슨딕슨선(Masondixon Line) 아래의 버지니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남부주와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 소위 중서부(Midwest)주에서 이뤄졌다. 특히 버지니아는 1964년 린든 존슨 후보의 승리 이후 40년 동안 공화당이 독식했다.
6일 현재 오바마의 우세 속에 개표가 지연되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역시 1980년 이후 줄곧 공화당을 지지해 왔다. 조지메이슨 대학 제레미 메이어 교수가 "앨 고어는 그 어떤 남부 주에서도 이기지 못했다"고 강조했듯, 남부 출신인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대통령 등을 제외하고는 남부 주에서 승리한 민주당 후보는 없었다.
보수주의가 뿌리깊은 남부와 중서부를 민주당 표밭으로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인구 구성의 변화 덕분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윌리엄 프레이는 "이민자 증가로 유권자 구성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오바마 당선자는 특히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플로리다를 집중 공략했다. 그 이유는 이들 주에서 최근 유색 인종의 비율이 증가한 데다 민주당 지지주에서 이주한 백인 인구도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보스턴글로브는 "타 지역으로부터의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그 결과 보수적 가정에서 자란 남부 젊은이 역시 타 인종에 대한 관용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오바마는 유색인종의 표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흑인의 97% 히스패닉 66% 아시아계 62%가 오바마를 지지했다. 이스라엘 신문인 하레츠도 오바마가 유대인 표의 77%를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여성 유권자 역시 오바마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MSNBC도 "여성 유권자의 지지가 오바마 승리의 핵심이었다"고 분석했다. 여성 유권자의 55%가 특히 기혼여성의 70%가 오바마를 지지했다.
■ 젊은 유권자가 이끈 선거혁명
선거인 명부에 새로 가입한 젊은 유권자의 지지도 오바마 승리의 견인차였다. 대학생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선거인 명부조차 등록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은 대대적인 유권자 등록운동의 영향으로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제네레이션 위> 의 저자인 에릭 그린버그도 "접전지에서 젊은 유권자의 활약이 오바마 당선에 큰 보탬이 됐다"고 말한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젊은 유권자의 66%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매케인을 지지한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66%의 지지율은 1976년 이후 최고치다. 제네레이션>
투표한 젊은 유권자는 약 2,3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2004년에 비해 약 220만 명이 증가했다. 특히 인디애나 플로리다 오하이오 콜로라도 등 전통적 공화당 지지주가 민주당 지지로 선회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주 대학생들의 투표 참여가 큰 몫을 했다.
온라인언론 마켓와치에 따르면 인디애나대학의 투표율은 287%나 증가했으며 사우스플로리다대학, 오하이오주립대학, 콜로라도 대학에서도 각각 66%, 92%, 45%나 증가했다.
때문에 이번 선거를 계기로 백인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이 철폐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백인들은 여전히 매케인을 지지했다. 백인 유권자는 플로리다(매케인 56%, 오바마 42%) 인디애나(매케인 54%, 오바마 45%) 버지니아(매케인 60%, 오바마 39%) 등에서 여전히 공화당에 지지를 보냈다.
AP통신은 6일 "출구조사 결과 오바마는 남부 주에서 백인의 표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며 "인종차별의 골은 도리어 깊어졌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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