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할 때 누군가는 소리를 들려주고 누군가는 풍경을 보여준다.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한 편의 연극을 펼쳐보였다.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주회 프로그램은 상당히 폭 넓은 선곡을 담았다. 메인 이벤트는 아무래도 유명한 '사계'지만 타르티니를 연상시키는 창의와 자유로운 서정미가 넘치는 비발디 만년의 협주곡 e단조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카르미뇰라는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그리고 연주회에서 상당히 모던하게 세팅된 바이올린을 들고 나선 것처럼,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바로크에 한정짓지 않았다. 화려한 기교와 활 켜는 위치를 폭넓게 바꿔가며 들려주는 만화경 같은 음색에서 바로크와 현대를 아우르는 그의 오랜 통찰력을 읽을 수 있었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같은 무대에 섰던 어떤 시대악기 단체보다도 완벽한 인토네이션과 신선한 화음을 들려주었다. 전반부를 구성하는 리피에노 협주곡에서 그 다이나믹의 변화와 감미로운 음색에 매혹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굴곡진 다이나믹은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듯 풍만한 느낌을 선사했다.
한 대의 첼로와 한 대의 비올로네로만 구성된 베이스 파트는 비록 수는 적지만 굉장한 뉘앙스를 지닌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계'의 여름과 겨울에서 들려준 바이올린과 첼로의 열정적인 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듣고 싶어진다.
카르미뇰라는 '사계'를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완결된 극, 인생의 은유로서 바라보는 것 같다. 악보는 흔한 '르 센' 판본을 사용했지만 다양한 음악적 장치와 표현을 통해 비발디 음악에 연극적인 특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연극의 주인공은 단연 카르미뇰라다.
변화로 가득한 움직임이 많은 연주 스타일, 그의 표정과 몸짓과 보잉 하나하나가 연극적인 연출에 힘을 더했다. 비발디가 본질적으로 오페라 작곡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다가왔다.
카르미뇰라는 새로운 판본, 특이한 시도, 기묘한 음향, 별난 장식음, 요란한 바소 콘티누오, 낙차 큰 다이나믹, 펑크 머리가 21세기 비발디의 전부가 아님을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일류 단체가 연주하는 '사계'를 많이 봐 왔지만 카르미뇰라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그 중에서도 음악적으로, 해석적으로, 기술적으로 가장 성숙되고 완성도가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지나치게 긴장시키지 않으면서 모든 청중을 몰입시킨 연주로 언제까지나 추억할 만한 밤을 선물했다.
최지영ㆍ고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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