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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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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입력
2008.11.0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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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J 굴드 지음ㆍ김동광, 손항구 옮김/세종서적 발행ㆍ526쪽ㆍ2만5,000원

우리가 무심코 쓰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란 말은 사실 방자하기 그지없다. 오래 전부터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풍성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사람들의 땅을 '발견'했다니. "서양인에 의한 미국 정복만큼 불길한 … 역사적 사건을 생각할 수 없다"(278쪽)는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의 저자 스티븐 J 굴드(1941~2002)의 단언에는 비장함마저 서린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에는 자신이 '발견'한 대륙에 대한 경이는커녕, 오직 황금에 대한 끝없는 굶주림만이 가득하다. 그에 의하면 원주민들은 노예로 만들거나 학살에 처할 대상일 뿐이었다.

서양사를 둘로 가른 대사건, 종교개혁의 속내도 비슷하다. 일단 교권을 장악한 루터는 반대자들에 대해 독선적이고 비관용적이었으며 분서나 교의말살 등 가톨릭이 저지른 과오를 답습했던 것이다. 그 같은 태도가 극단적으로 표출됐던 것이 당시 일어난 '인간 투척 사건'이다. 프로테스탄트들의 뜻대로 사태가 나아가지 않자, 왕궁에 몰려가 가톨릭의 지도자들을 성 아래 해자로 던져 버린 사건이다.

결국 인간은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저주 받은 유전자가 우리를 암흑의 피조물로 만든 것일까? '새로운 과학'으로 각광 받고 있는 진화심리학이 최근 대중화되면서 속류로 변질, 이제 저 같은 주장이 공개적으로 발표된다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됐다.

그러나 고생물학자인 저자는 문화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심각한 오류라 지적한다. 다윈주의적 진화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속도, 가변성, 유연성을 고려하는 '라마르크 방식'을 망각한 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초기 진화론 논쟁 당시의 가설로, "종들은 아주 탄력적으로 잘 적응하므로 그들이 고등한 형태로 전환할 수는 있을지라도 멸종될 수는 없다"(238쪽)는 주장이다. 저자는 더 나간다. "생물 종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뒤 그 대부분이 멸종한 다음, 나머지 생존자들이 또 다시 폭발적으로 다양화한다"는 '단속 평형 이론'으로 다윈의 진화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문화의 길'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고 종용한다. 인류는 유전자 대신 책 등 우리가 이룩한 문명적ㆍ문화적 성과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문화의 길'을 라마르크의 이론에 기대어 주장하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이 인문적인 도덕론과 문화의 세례를 받으면 후손들에게 대학살 시나리오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역설이다.

유머와 박식이 넘치는 그의 글을 읽는 일은 현대판 '소요유(逍遙遊)'다. 영화, 소설, 야사와 야담. 심지어 개인사까지 그의 곰살궂은 말솜씨에 녹아든 덕분이다. 책의 3분의 2는 인간에 대한 에세이, 나머지는 다른 생물들에 대한 통찰이다. 제목의 레오나르도와 조개화석은 두 이질적 요소를 상징한다.

"찰스 다윈 다음으로 유명한 고생물학자"로 불렸던 스티븐 J 굴드의 거장다운 솜씨는 자연과학 저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말을 듣는다. 초기 진화론자의 실수에서 기생동물인 근두목의 기괴한 생태까지를 한 데 아우르는 그의 웅숭깊음 덕이다. 그의 상상력은 구석기시대 동굴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겨준 '멸종 동물'을 21세기에 3D 컴퓨터 애니메이션보다 더 생생하게 살려 낸다.

스티븐 J 굴드는 하버드대 교수(지질학ㆍ과학사)를 지냈고, 과학의 역사적ㆍ사회적 맥락을 강조한 <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등의 저서로 전미도서상 등을 석권하기도 한 '인문주의적 박물학자'.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내추럴 히스토리' 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펴낸 10권 중 하나로, "진화의 개념과 얼개를 과학사적인 시각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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