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을 것을 자임하고 나섰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중국은 각국 정부, 국제금융기구들과의 협력을 통해 금융 안정과 세계 경제성장을 이룩할 것"이라며 처음으로 '중국 역할론'을 정식화했다.
동시에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총리급 회담에 참석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회원국들의 어려운 식량 사정과 외환 사정을 돕겠다고 밝혔다. 식량난을 겪는 타지키스탄과 외환 사정이 어려운 러시아를 도울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원 총리의 언급에서 드러나듯 중국의 역할론은 우선 전략적 이해가 걸린 SCO 회원국과 파키스탄 등 맹방들에 대한 지원을 의미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베이징을 찾은 아시프 알리 자리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금융지원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중국이 새 금융질서 개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끝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금융위기 속에서 우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금융질서 문제보다는 중국 경제 살리기를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26일 베이징에서 폐막한 아시아ㆍ유럽(아셈) 정상회의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주도의 현 질서를 뜯어고치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원자바오 총리는 적극 호응하지 않았다.
중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평화적으로 패권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국가전략 '화평굴기'와도 맞닿아 있다. 향후 30년간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중국은 미국과 일본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본이 유입돼야 하기 때문에 금융자본에 대한 강력한 통제는 중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또 금융질서 재편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폐쇄된 중국금융을 개방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회가 열려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은 팔짱을 끼고 있지는 않을 듯하다. 정신리(鄭新立)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은 "현 위기는 중국에 내수 확대의 기회, 막대한 보유외환으로 에너지와 기술을 보유할 수 있는 기회, 위안화가 국제기축통화로 부상하는 기회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대만 등과의 교역에서 위안화를 결제 화폐로 하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미국과 중국의 투표 지분이 16.77%대 3.66%인 데서 확인되듯 중국은 초라한 금융 위상을 이번 기회에 높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국제금융기구를 전면적으로 수술해 선진국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국제기구의 민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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