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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10월의 마지막 밤에 우리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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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10월의 마지막 밤에 우리가 할 일

입력
2008.10.3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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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10월의 마지막 밤이네요. 여러분들은 내일 무얼 하실 작정입니까? 혹시 어스름을 타고 지는 낙엽을 밟으며,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르몽의 시를 외우시겠습니까. 아니면 포장마차에서 한 잔하고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도 부르시겠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네요. 하지만 이 달의 그 많은 기념일들을 지낼 때마다 떠올렸던 생각들을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2000이 넘던 주가가 900포인트까지 떨어지고, 사상 최대로 금리를 인하했는데도 시장은 여전히 무덤덤하고, 감사원은 농민들 대신 '직불금'을 타간 사람들을 조사한 서버를 복원하느라고 혈세를 낭비하고, 머리 숙여 사죄할 정치인들은 상대에게 잘못을 떠넘기면서 큰소리치는 마당에 저마저 그러면 욕하고 싶은 그 분들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요.

'국군의 날', '재향군인의 날', '경찰의 날', '유엔의 날'에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생각해 봤지요. 지난 9월 겨우 4명이 중국 어부들에게 쇠몽둥이로 구타 당하고 마침내 바다 한복판에서 허우적대다 숨진 박경조 경위, 2002년도 서해안 무력 충돌 때 죽은 병사들, 촛불 시위 때 갓난둥이 유모차를 방패로 삼은 '엄마부대'만 주목하고 맞은 경찰들은 외면하는 시각,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온 건 접어두고 외세 개입으로 통일이 좌절되었다는 논리가 계속되면 나라를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대요.

'노인의 날', '개천절', '한글날', '문화의 날', '교정의 날'에는 우리의 문화와 교육을 생각해 봤습니다. 외국어를 섞어 써야 지식인 취급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는 건 이미 이 난(欄)을 통해 말씀 드렸으니 접어두겠습니다.

그러나, 노인과 자기 문화를 멸시하고, 걸핏하면 교실로 쳐들어가 담임 선생님 멱살을 잡는 학부모, 근무기록부를 폐지하고 학습지도안을 안 쓰겠다는 선생님들, 이런 문화가 세력을 얻으면 누가 쳐들어오지 않아도 망할 것 같대요.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교육을 망치고, 남의 문화를 숭상하면 더 버틸 방법이 없으니까요.

엊그제 '저축의 날'에는 역대 정부의 경제 정책과 국민들의 태도를 생각해봤지요. 그러다가 해외 여행 시 소지할 수 있는 외화 액수를 늘리면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권장해온 정책과 주말마다 고속도로가 메어지는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그 미덕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원조교제를 권장하고, 대학생들로 하여금 밤새워 용돈 벌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강의 시간에 졸게 만들고, 다시 환란(換亂)을 불러왔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그럼, 당신은 자신은 들여다 봤느냐구요? 네에. 지난 10년 동안 모든 필자와 단체와 출판사가 직접 전자책을 만들고, 각 도서관과 포털 사이트에 연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네트워크를 무상으로 보급하려고 한국디지털종합도서관(www.kdlib.com)을 구축해온 걸 후회했었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우리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유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세요. 유서는 평생 써온 문학원론서와 작품 정리를 말하는 거니까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지요? 지금같이 어려운 세상에는 세속적 자아를 버리고 본래 내가 할 일을 생각해야 모두 함께 살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내일은 10월의 마지막 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해 봅시다.

尹石山 시인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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