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우리 경제를 짓눌러온 가장 무거운 짐은 외화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었다. 세계적 신용경색이 장기화하면서 달러 차입 길은 막혔고, 만기 도래하는 단기 외채에 대한 상환 부담은 날로 커졌다. '9월 위기설'이 탄생했던 배경도, 외환보유액 부족 논란이 제기됐던 이유도, 원화 가치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던 원인도 모두 외화 유동성에 있었다.
이제 큰 시름을 하나 덜게 됐다. 한국과 미국의 통화 스와프 계약이 체결됐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신흥 시장국에 대한 단기유동성지원창구(SLF)를 개설했다. 국회는 국내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한 지급보증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0일 "각종 조치들이 잇따라 이뤄지면서 더 이상 국내에 외화 유동성 부족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한ㆍ미 양국간 통화 스와프 계약이다. 사실상 외환보유액이 300억달러 더 늘어난 것과 다름없다. 굳이 위기가 오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빌려 쓸 수 있는 돈 300억달러가 추가로 확보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300억달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외화 유동성 위기는 실제보다 부풀려진 심리적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여전히 2,4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환율이 급등하고, 극심한 달러 기근 현상에 시달려온 것은 "혹시나"하는 과도한 공포감의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제 '달러 우산' 'FRB의 보호막'아래 편입됨으로써, 이런 과도한 불안감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관측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미국이 한국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시장에 만연해 있던 심리적 공포감은 거의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현재로선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했지만, IMF 지원 프로그램 역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최후의 보루로 220억달러가 추가 확보됨으로써, 적어도 환란재발 우려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됐다. 국회 지급보증안 통과로, 국내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달러를 차입할 수 있는 여건도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모든 병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든든한 방어책이 하나 마련된 것일 뿐,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긴 힘들다. '외환위기' 가능성은 소멸됐지만, '실물경제위기' 위험은 여전히 세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계 기업들은 서서히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고, 내수 침체에 더해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도 둔화세가 확연하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다면, 우리 경제의 침체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고 이는 다시 금융시장에도 엄청난 충격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지 '달러 안전판' 만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계약으로 과도한 불안감을 해소하게 됐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호재가 틀림 없다"면서도 "실물 경제로 옮겨붙고 있는 위기를 선제적으로 차단하지 못한다면 금세 효과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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